오피니언 대학생 칼럼

세속에 취한 자, 세속의 법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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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김민수
서울시립대 기계공학과 2학년

“나는 아직도 이런 꿈을 버리지 않고 있다. 이 다음 어딘가 물 좋고 산 좋은 곳에 집을 한 채 짓고 싶다. 사람이 살기에 최소한의 공간이면 족하다.” 고(故) 법정 스님의 말씀이다. 이런 소박함과 ‘무소유’를 강조하셨던 법정 스님이 이번 조계종 폭로 사태를 보시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이실까.

 스님들의 도박 동영상 유포를 시작으로 핵폭탄급 폭로전이 계속되고 있다. 일전에 조계종에서 제적당한 성호 스님이 승려들의 억대 도박 사건과 명진 스님, 자승 스님 등 조계종 큰스님들의 ‘룸살롱 성매수’까지 추가 폭로하자 조계종도 성호 스님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고 나섰다. 스님과 도박, 스님과 룸살롱, 스님과 세속이라니. 이는 평소 우리가 어색하게 여기는 ‘스님과 고기’라는 조합보다 훨씬 더 이질적이고 그래서 더욱 충격적이다. 이 모두 부처님오신날을 코앞에 두고 드러난 불교계의 치부라서 딱하다.

 더욱 기가 차는 것은 이번 폭로전에서 터져 나온 ‘발언’이다. 명진 스님이 “룸살롱은 갔지만 성매수는 안 했다”거나 폭로한 성호 스님에 대해 “너는 떳떳하냐”고 내뱉은 말이라든지, 조계종 입장을 변론하기 위해 라디오에 나온 정념 스님의 “판돈이 300만~400만원에 불과했다”거나 “어른들이 나이 드시면 치매에 걸리지 않도록 화투를 하면 좋다고 하더라”는 발언이 그것이다. 어떻게 이렇게 험한 말이 승려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가.

 이번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터지는 정치인이나 연예인의 스캔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게 조명되어야 한다. 수행과 청빈, 절제를 등에 지고 사셔야 하는 분들이 ‘돈’을 갖고 장난을 치시다니. 그 돈은 신자들이 부처님께 공양한 귀한 돈 아닌가. 이런 점에서 이번 스님들의 추태는 불자들에게 ‘인간적인 배신’ 그 이상이다. 이번 사건으로 불교 전체의 위신과 명예는 끝도 없이 추락했다. 그런데도 정작 사건에 연루된 스님들은 서로가 자신과 종파의 명예가 훼손됐다며 다투고 있다.

 도대체 누구의 명예가 훼손되었다는 것인가. 정작 훼손된 것은 과거 수행에 정진하신 선인들과 지금도 은인자중하며 홀로 고행하고 계신 스님들의 명예와 믿음을 기만당한 불자들이다. 이들에게 먼저 깊은 사죄를 드려야 하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한다.

 ‘쇠에서 생긴 녹이 쇠를 먹어가듯 방종한 자는 자기 행위 때문에 스스로 지옥으로 걸어간다.’ 법구경에 있는 구절이다. 이 사건에 연루된 스님들이 이 구절을 다시 읽는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불교계는 다시금 그들의 가르침이 우리에게 와 닿을 수 있도록 근본적인 쇄신 의지를 보여야 한다. 지금 상황에서 그들의 참회 기도는 그저 무의미한 책임회피로 보일 뿐이다. 불교와 신자들을 배신한 자들, 이미 녹이 온몸에 번진 자들, 세속(世俗)에 취한 그들은 이제 세속의 법으로 다스려져야 한다.

김민수 서울시립대 기계공학과 2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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