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 학교폭력] 학교폭력서 아이들 구하는 일, 아들에 대한 속죄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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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기(64) 청소년폭력예방재단 명예이사장(오른쪽)과 오사와 히데아키(大澤秀明·68) 이지메피해자연합 대표가 23일 서울에서 열린 학교폭력 예방 세미나에서 손을 맞잡고 있다. 두 사람은 1990년대 중반 학교폭력으로 각자의 아들을 잃은 뒤 학교폭력 예방운동에 뛰어들었다. [김성룡 기자]

“한국의 학교폭력과 일본의 이지메(집단따돌림)는 이름만 다를 뿐 다 같은 폭력입니다.”

 김종기(64) 청소년폭력예방재단(청예단) 명예이사장과 오사와 히데아키(大澤秀明·68) 일본 이지메피해자연합 대표는 23일 서울 영등포의 하이유스호스텔에서 열린 학교폭력 예방 세미나에서 처음 만났다. 하지만 두 사람은 마치 오랜 친구처럼 손을 꼭 잡았다.

 김 이사장이 “우리에겐 공통점이 많다”고 하자 오사와 대표가 “죽은 아드님의 사진을 보고 우리는 같은 상처를 갖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고 답했다. 두 사람은 10여 년 전 아들을 학교폭력으로 떠나보냈다.

 1995년 6월 김 이사장의 아들 대현군(당시 고1)은 아파트 4층 자신의 방 창문에서 뛰어내렸다. 첫 시도가 실패하자 다시 계단을 올라가 몸을 던졌다. 잘생긴 외모와 서글서글한 성격으로 인기가 많았던 그를 죽음으로 내몬 건 학교폭력이었다. 2학년 남학생들은 대현군을 ‘재수없다’ ‘질투가 난다’며 각목으로 때리고 옷과 돈을 빼앗았다. 김 이사장은 “대현이가 온몸에 멍이 들고 신발을 뺏겨 맨발로 집에 와도 동네 불량배 짓인 줄만 알았다”며 “그걸 제대로 눈치채지 못한 내 자신이 아직도 원망스럽다”고 말했다. 다음해인 1996년 1월엔 오사와 대표의 아들 히데타케(秀猛)군이 목을 매 자살했다. 당시 중 3이었다. 유서엔 3년간 당한 일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중1 때 이사 온 날부터 이지메를 당했어요. 지금까지 돈도 30만 엔 넘게 뺏겼어요. 그런데 또 돈을 달래요. 이제 저는 돈이 없어요. 그래서 죽기로 했습니다’. 유서에 써 있는 또 다른 구절에 오사와 대표는 치를 떨었다. ‘선생님께도 얘기했지만 선생님은 ‘너도 욕을 했잖아’라며 아무렇지 않게 넘어갔어요’.

 두 사람의 공통점은 또 있다. 슬픔에 빠져 자포자기하지 않고 추가 희생자를 막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다. 김 이사장은 95년 8월 아들의 사연을 세상에 알리고 청예단을 세웠다. 본격적인 활동을 위해 다니던 회사도 그만뒀다. 이후 청예단은 1997년 청소년보호법과 2004년 학교폭력예방법 제정에 큰 역할을 했다. 청예단은 현재 전국에 13개 지부를 두고 매년 6만 건의 상담을 진행하는 국내 최대의 학교폭력예방단체로 자리 잡았다. 오사와 대표는 가해 학생들에게 죄를 묻기 위해 법정투쟁을 시작했다. 아들이 죽은 지 9년 만인 2005년에 마침내 가해자 2명에 대한 유죄판결과 민사상 배상책임 판결을 받아냈다. 이듬해 후쿠오카에서 중2 학생이 따돌림으로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이지메피해자 모임을 결성했다.

 이제는 떠나간 아들들을 잊을 때도 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두 사람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입을 모았다.

 “아들에 대한 미안함, 용서받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면 일억천금을 준다고 해도 지금처럼 활동하진 못했을 거예요. 끝까지 해야죠. 학교폭력으로 목숨을 끊는 아이들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이한길·김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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