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은 예닐곱 번 올랐다. 설악·오대·백두산도 훑었다. 몸 움직이는 것이라면 질색을 하는 화가 사석원(52)은 그렇게 수 년간 전국 명산을 돌았다. 폭포를 보기 위해서다.
폭포는 물이 많을 때 봐야 제격, 장마철 진흙탕을 미끄러지면서도 수없이 올랐다. “2년 전 설악산을 꾸역꾸역 올라갔을 때 폭포가 나왔어요. 그때 이상하게 설렘을 느꼈죠.” 한국의 명폭(名瀑) 100곳을 화폭에 담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 금강산 구룡폭포, 서귀포 엉또폭포.... 한국은 넓고 폭포는 많았다.
사씨는 한국화를 전공한 뒤 유화를 그린다. 강한 붓질과 두터운 질감이 특징. 튜브에서 짜낸 그대로 캔버스에 물감을 올리고, 거친 동양화 모필로 붓질해 자국을 그대로 살렸다. 이불 덮듯 3∼4㎝까지 올라간 유채 물감이 아직도 손 대면 묻어날 것 같다.
장쾌한 폭포에 그의 장기인 동물 그림이 어우러졌다. 폭포의 인상과 어울리는 꽃과 동물을 그려 넣었다. 백두산 천지엔 닭과 부엉이, 새와 꽃이 어우러진 가운데 흰 수염 호랑이가 익살맞게 도사리고 앉았다. 민화의 해학과 맞닿는 그곳에 사석원의 폭포 그림이 있다. 오대산 구룡폭포는 부엉이 두 눈동자 사이에서 내리 꽂힌다. 오랜만에 함께 갔다 부부싸움만 하고 온 지리산 한신계곡 폭포 그림에선 커다란 닭 두 마리가 싸우고 있다.
사씨가 2년 만에 여는 개인전 제목은 ‘산중미인(山中美人)’. 도록엔 이렇게만 적었다. “산 속에서 미인을 만났다. 좋았다. 참 좋았다.”
폭포는 산의 심장이다. 심장이 약하게 뛰면 건강하지 않듯 산이 살아있으려면 폭포 소리가 우렁차야 한다. 전시장에 가득한 건 결국 살아있는 것의 힘, 원초적 생명력이다. 6월 3일까지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입장료 3000원. 02-720-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