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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컬처 뉴 리더] 3. 인디밴드-비상을 꿈꾼다

중앙일보

입력

"드럭으로 내려가는 계단은 매우 위험해보인다. 계단 우측엔 벽이 있지만 좌측에는 난간이 없다. 발을 헛디디면 굴러떨어질 판이다. 계단 위에 깔린 빨간색 카펫은 웬지 질퍽해 보이고, 여기 저기 더럽혀져 있고, 담배로 지진 자국이 눈에 띈다. 벽에는 스프레이와 매직으로 쓴 낙서가 어지럽다. 처음 오는 사람들은 그 낯선 분위기에 긴장한 가슴을 쓸어내려야 한다." (문석 외 지음 '날아라 밴드 뛰어라 인디' 에서)

홍대 앞 클럽 드럭에 대한 묘사다.

'한국 인디 밴드의 산실' '인디 문화의 고향' 등 각종 매체의 다소 호들갑스럽기까지한 칭찬에 호기심을 느끼고 드럭을 찾은 이들, 특히 깔끔하고 우아한 카페나 바에 익숙한 이들은 드럭의 모습을 보고 거부감 혹은 현기증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현기증, '어쩌면 위험할지도 모른다' 는 불안함을 일단 접고 그곳에 들어가 일명 '드럭 밴드' 로 불리는 이 클럽 밴드들의 공연을 보면 열 중 여덟은 꼼짝없이 드럭에 중독되기 일쑤다.

매주 토요일 오후 6시면 하나둘 모여드는 드럭의 팬들은 어쩌면 그런 자발적인, 즐거운 중독자들이다.

불과 2~3년 사이에 한때 언론과 평단에 의해 과대 포장됐던 인디 밴드들을 둘러싼 거품이 사라지고 인디 열풍이 한풀 꺽였다는 말이 많다.

하지만, 한국 가요가 지겹다고, TV만 틀면 떼로 몰려나와 웃고 떠들며 테이프 연주에 맞춰 입만 뻥끗거리는 '금붕어' 들은 더 이상 보기 싫다고, 왜 진짜 음악하는 젊은이들은 없느냐고 한탄하는 이들에게는 '그렇다면 드럭에 가보라' 는 권유가 아직도 유효하다.

밴드 멤버와 팬들로부터 '아저씨' 로 불리는 드럭 대표 이석문(41)
씨가 처음 클럽을 연 것은 1994년. 이듬해 여름 오디션을 자청한 '네 명의 수상쩍은 녀석들' 이 그와 의기투합, 밴드를 결성했다.

초기에는 전설적인 미국 얼터너티브 록 밴드 너바나의 노래들을 베껴 연주하던 이들은 오랜 라이브 공연에서 펄펄 뛰는 연주와 무대 매너를 익혔다.

거기에 작곡 능력까지 갖춰 일약 홍대 앞의 스타 밴드로 떠올랐다. 그들이 바로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 대표 인디 밴드 크라잉넛.

드럭 이후 재머스.롤링스톤스.하드코어.프리버드.하드코어.마스터플랜 등 많은 클럽이 문을 열었고, 이 가운데 일부는 클럽에서 노래하는 인디 밴드들의 노래를 거대 자본이나 기존 음반기획사의 도움 없이 저예산으로 앨범을 제작하는 인디레이블의 기능도 갖게 됐다.

지금은 펑크 록의 드럭, 힙합의 마스터플랜, 하드코어의 롤링 스톤스가 활발하게 활동중이다.

그중에서도 드럭은 한국 인디 밴드의 산실이라는 명성에 걸맞는 역할을 해왔다.

지금은 크라잉넛.레이지본.파스텔 등 세 밴드가 활동중이지만 현재 크라잉넛과 함께 최고 인기를 누리고 있는 펑크록 밴드 노브레인, 하드코어 밴드 쟈니로얄 등이 모두 드럭이 배출한 밴드들이다.

드럭 밴드들 가운데 일본에서도 상당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크라잉넛은 최근 자신들이 주연으로 출연한 저예산 극영화 제작을 끝내고 3집을 준비중이며, 레이지본은 지난해 쟈니로얄과 함께 드럭 클럽 앨범인 '아우워 네이션 4집' 을 낸데 이어 독집 앨범을 만들고 있다. 파스텔은 여성만으로 구성된 3인조 록밴드다.

21~23살의 노진우(보컬.기타)
.임준규(기타)
.안경순(베이스)
.김석년(드럼)
과 일본 청년 진 토시오(神 俊雄.트럼펫)
로 구성된 레이지본은 스카 펑크를 기본으로 색깔 있는 음악을 구사하는 5인조 밴드. 크라잉넛과 함께 드럭을 대표할 또 하나의 스타 밴드로 주목받고 있다.

스카는 자메이카 민속음악이 레게로 발전하기 이전 단계의 음악으로 흥겨운 리듬이 반복되는 것이 특징. 스카 펑크는 스카를 펑크록과 결합시킨 것으로 김종서가 '실연' 등에서 시도한 적이 있으나 스카 펑크를 제대로 구사하는 밴드는 국내에 거의 없었다.

이들이 '아우워 네이션 4집' 에서 선보인 '큰푸른물' '모르겠어요' '나 오늘 땡 잡았어' 등을 들으면 저절로 어깨가 들썩여지며 볼륨을 높이게 된다.

재미있지만 천박하지 않은 가사, 흥겹지만 음악적 무게를 잃지 않은 쿵짝쿵짝 하는 멜로디가 세대를 넘어 록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충분히 공감하며 즐길 만하다.

레이지본은 특히 크라잉넛보다 한층 더 광범위한 팬층을 확보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췄다는 면에서 인디 밴드가 활성화하고 대중에게 다가가는데 앞장 설 주역으로 기대된다.

최재희 기자<cjhee@joongang.co.kr>

사진=장문기 기자<ch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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