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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字, 세상을 말하다] 革新 혁신

중앙일보

입력

옛날 짐승의 가죽은 귀했다. 옷을 짜고 그릇을 만드는 재료로 활용됐다. 짐승을 잡아 털을 벗겨내고 껍질만 칼로 떠낸 것이 바로 가죽이다. 가죽을 말리기 위해 양지에 펼쳐 널면 가운데는 원형 몸통이, 위에는 머리가, 아래에는 다리와 꼬리가 붙어있게 된다. 이를 상형으로 표시한 글자가 바로 가죽이라는 뜻의 ‘革(혁)’이다.

가죽은 전쟁용 방패를 만드는 재료로 사용되기도 했다. 맹자(孟子) 공손추(公孫丑) 편에는 ‘국가를 공고히 함에 위험한 지형에 의지하지 말고(固國不以山溪之險), 천하에 위엄을 떨칠 때 군사와 병기에 의존하지 말라(威天下不以兵革之利)’고 했다. 여기에 나오는 ‘革’이 바로 가죽으로 만든 방패였다.

‘革’에는 ‘바꾼다’는 뜻도 있다. 고대 한자 사전인 옥편(玉篇)에선 ‘革, 改也’라고 했다. 가죽은 동물의 껍질이 물리적으로 변해 만들어진 것이다. 가죽 그 자체에 ‘변화(變)’의 뜻을 내포하고 있기에 ‘바꾼다’라는 뜻으로 발전했다는 게 중국 어문학자들의 설명이다. 춘추전국시대 말기에 쓰여진 여씨춘추(呂氏春秋)에는 ‘천지음양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이뤄질 뿐이다(天地陰陽不革而成)’라고 했다.

‘革’이 들어간 단어로는 ‘혁명(革命)’이 있다. 이는 ‘하늘의 명(命)을 바꾼다’는 뜻으로 하늘의 명을 받은 존재, 즉 황제를 갈아치운다는 것을 말한다. 주역 풀이서인 역(易)·혁(革)·단사(彖辭)에는 “당왕과 무왕의 혁명(湯武革命)은 하늘의 뜻에 순응하고, 사람의 요구에 호응하는 것(順乎天而應乎人)”이라고 했다. 폭군이었던 하(夏)나라 걸(傑)왕과 상(商)나라 주(紂)왕을 몰아내기 위해 혁명을 일으킨 것은 정당했다는 설명이다.

혁신(革新)이란 단어도 있다. 이는 ‘정신혁고(鼎新革故)’에서 온 말이다. 주역(周易)은 이를 ‘옛 것을 버리고(革, 去故也), 새로운 것은 세운다(鼎, 取新也)’는 뜻으로 해석했다.

신·구 당권파로 나뉘어 내홍을 겪는 통합진보당 안에 혁신비상대책위가 생겼다. 강기갑 대책위 위원장은 “가죽뿐만 아니라 내장도 바꿀 것”이라고 결연한 의지를 밝혔다. 지당한 말이다. 곪고 썩은 것은 다 드러내고, 양지에 바짝 말려 당(黨)의 성격을 바꿔야 한다. 당권파였던 종북 좌파의 환골탈태를 꾀해야 한다. 그게 ‘혁신’을 내건 비상대책위가 할 일이다.

한우덕 woody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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