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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괜히 했다는 후회도 … 누가 한다면 말리겠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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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1호 10면

정치판엔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도 없다는 말이 있다. 박근혜와 김무성, 두 사람을 봐도 그렇다. 찰떡 동반자인가 싶은데 어느 순간 등을 돌리고, 영원히 갈라선 줄 알았는데 다시 다가서 손을 잡는다. 지난 대선 경선과 이른바 친이계의 ‘친박 공천 학살’ 때까지만 해도 김무성은 친박계의 좌장으로 불렸다. 그러다 세종시 원안 수정 논란이 불거졌을 때 김 의원이 박 전 대표의 원안 고수 입장에 반기를 들었고 두 사람의 관계는 완전히 틀어졌다. 주고받는 서로의 눈길이 냉랭했다. 4·11 총선이 박근혜 체제로 치러지면서 김 의원은 공천에서 미끄러졌다. 당 안팎에선 김 의원이 탈당한 뒤 공천 탈락 반발자들을 규합해 신당을 꾸릴 것이라고 점쳤다. 그는 예상을 깨고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러곤 백의종군(白衣從軍)을 외치며 새누리당 후보들의 지원 유세에 적극 나섰다. 그의 행동에 새누리당의 도미노 탈당 사태가 주춤했다. ‘제3당’은 동력을 잃었다. 새누리당 승리의 원동력이 됐다는 평가는 그래서 나왔다. 박 전 대표로선 톡톡히 신세를 진 셈이다. 4선의 김 의원은 17일 16년간의 의원 생활을 정리하고 여의도 의원회관 420호실을 떠났다. 그를 붙잡고 두 사람 간의 관계와 대선 정국 전망을 들어봤다.

[허남진 대기자의 인물탐구] 16년 의원생활 정리한 ‘백의종군’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

-아쉬움이 클 텐데 30년 가까이 현장에서 몸으로 겪어온 정치, 과연 뭐라고 정의 내릴 수 있습니까.
“요즘 괜히 시작했구나 하는 후회를 하기도 합니다. 지난 한 달간 쉬면서 지방 여행도 다녀보니 참 좋더군요. 그동안 저는 돼지나 소, 닭처럼 사육당하는, 그런 생활을 한 거나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국회에서 하루 종일 회의하고 일하죠, 주말이면 지역구에 내려가 행사마다 쫓아다녀야 하죠. 지역민과의 약속도 빼곡하죠. 서울에서도 동료들, 기자들과 항상 어울려 대화하고 술 마시고…가정이 없는 거죠. 난 우리 아이들이 언제 컸는지 모를 정도여서 늘 죄스러운 마음입니다. 집사람한테도 마찬가지고. 국민들로부터 욕은 또 얼마나 많이 먹습니까. 억울할 때도 많지만 어쩝니까. 참 할 짓이 못 된다…저야 이제 이 길을 계속 갈 수밖에 없지만, 누가 정치하겠다면 말립니다.”

-공천에 탈락했을 때 탈당해 신당을 꾸릴 것이란 관측이 많았습니다. 당시 불출마 선언을 한 진짜 속내는 뭡니까.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진입하려면 12월 대선에서 반드시 우파 정권이 재창출돼야 한다는 충정이 저를 압박했습니다. 우파의 경제정책이 더 유지돼야 국민소득 3만 달러가 달성되고 그래야만 후손들의 미래가 보장될 수 있는 거 아니냐, 그런 생각에 도달하고 나니 선택의 여지가 없더군요. 개인의 정치적 목적만을 고집해 탈당하고 새로운 당을 만들면 보수 우파의 분열로 이어질 테고, 그래서 총선과 대선에서 보수가 패배하면 역사에 큰 죄가 될 수 있다고 판단돼 고민 끝에 결심한 겁니다. 어려운 결심이었습니다만 많은 국민이, 해외에 계신 교포들까지 격려해주셔서 잘했구나 안도했습니다.”

-박 전 대표와 사전 조율이 있었던 건 아닙니까. 밀약설도 나돌던데.
“온갖 억측이 난무하더군요. 박근혜 전 대표로부터 미래에 대한 보장이 있었다느니, (이명박) 대통령하고 대화해서 결정했다느니, 또 김영삼 전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다 등등…. 전혀 그런 일이 없었고요, 젊은 보좌관 두 명하고 사흘 동안 고민하다 내린 결론입니다.”

-대선에 직접 뛸 의향이 있습니까.
“정치 시작하면서 그런 꿈 안 꾼 사람 있었겠습니까. 저도 한때 그런 생각을 했고, 주위 권유도 있었지만 아직까지는 제가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요즘 자격도 없는 사람들이 나서는 거 보면서 좀 쓴웃음이 나와요. 그 사람들처럼 취급받아서야 되겠습니까.”

-쓴웃음 짓게 하는 사람들이라면 박 전 대표 이외의 다른 후보들을 모두 지칭하는 거 같습니다만.
“큰일 날 소리. 아니에요. 그건 아닙니다. 우리 당에는 아주 훌륭한 자산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번 선거도 박근혜 대세론의 흐름으론 저는 어렵다고 봅니다. 현재는 약자에 있지만 앞으로 검증되는 과정에서 그분들의 훌륭한 자질이 증명되고, 또 국가 미래발전을 위한 비전이 국민들의 마음을 감동시키게 되면 의외의 결과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박근혜 아닌 다른 사람이 후보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인가요.
“세상 일은 알 수 없는 거 아닙니까. 현재로는 박 전 대표가 절대적으로 유력한 입장입니다만, 너무 일방적으로 가면 국민들이 흥미를 잃게 되죠. 지난번 이명박 대통령이 역대 최다 득표 차이로 당선될 수 있었던 동력이 뭡니까. 본선보다 더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었던 예선이었거든요. 이번에 그렇게까지 가긴 어렵겠습니다만 좋은 경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나서서 검증받는 과정이 국민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흥미를 이끌어내는 방향으로 후보 선출 전당대회가 진행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박근혜 추대론이니 뭐니 하는 건 독약 같은 거예요. 절대 그런 일이 있어선 안 됩니다.”

-경선 룰을 바꾸자는 일부 후보자들과 생각이 똑같네요.
“그런 주장을 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놓고 과연 어떠한 길로 가는 것이 본선 승리에 도움될 것인가 본격적으로 토론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에 대해 박 전 대표 쪽에서 너무 조건반사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생각해요.”

-한때 최측근으로 겪어 본 박근혜, 어떤 사람입니까.
“박 전 대표에 대한 평가는 이미 국민들이 다 내리지 않았습니까. 지지율 압도적 1위, 그게 옳은 평가라고 생각합니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박 전 대표와 호흡을 맞춰 일할 때 서로간에 뜻이 잘 맞아서 일일이 보고하지 않고도 이심전심으로 통했어요. 서로 웃으면 뜻이 통할 정도였죠. 제가 사무총장 할 때인데 재·보궐선거에서 전승하는 등 당에 많은 업적을 남겼습니다. 박 전 대표는 투철한 애국심, 품위와 일에 대한 진지성, 약속을 지키겠다는 신념, 결정을 내리기 전에 항상 국민 먼저 생각하기 등 훌륭한 점이 많아요.”

-그런데 왜 틀어졌습니까.
“사람이란 게 다 완벽할 수는 없는 거 아닙니까. 여러 가지 훌륭한 점이 있지만 제가 보기에 이런 건 좀 부족하다는 걸… 참모란 지도자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는 역할도 중요합니다. 그걸 나름대로 충실히 했던 것인데…아시다시피 제가 원래 언행이 좀 거칠잖아요. 그런 걸 박 전 대표가 수용하지 못한 데서 오는 오해가 생기고, 또 충정으로 한 이야기를 주변에서 왜곡해 모함도 하고 그런 거 때문에 사이가 멀어졌습니다만 다 지나간 얘깁니다. 제가 백의종군하면서 마음을 다 비웠기 때문에 다시 박 전 대표를 존경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미움은 다 없어졌고. 그래서 박 전 대표가 잘 되길 바랍니다.”

-‘박 전 대표의 부족한 점’이라면 이재오 의원이 말한 ‘나 홀로 리더십’ 같은 건가요.
“다른 분이 한 이야기에 대해 제가 이러쿵저러쿵 하는 건 옳지 못하고요. 어쨌든 사람이 완벽할 순 없는 거 아닙니까. 그 당시로는 나의 정치인생은 박근혜 대통령 만드는 데 모든 걸 다 던지겠다는 생각에서, 지금보다 더 훌륭한 대통령 만들겠다는 욕심에서 얘기했던 건데 그게 수용되지 못한 현실이 안타까웠고. 그 뒤론 저도 마음에 앙금이 생기고, 섭섭한 마음이 생기고 해서 완전히 돌아섰었습니다만….”

-지금은 틀어졌던 관계가 완전히 봉합됐다는 말씀인가요. 불출마 선언 뒤로 두 분이 만난 적이 있나요.
“만나지는 않았습니다. 앞으로 만나게 되겠지요.”

-새누리당이 대선 승리를 위해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 뭐라고 보십니까.
“민주적 사고를 가져야 합니다. 역대 선거를 보세요. 그동안 우리나라는 연대세력이 쭉 집권해 오지 않았습니까. 김영삼 대통령의 3당 합당, 김대중 대통령의 DJP연대, 노무현 대통령의 호남-PK(부산 경남) 연대가 그렇잖아요. 이명박 대통령도 보수-진보의 연대라고 봐야 합니다. 다음 정권도 역시 연대세력이 잡게 될 겁니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야당과 시민세력 등 좌파 진보세력이 연대해 성공하지 않았습니까. 우리 우파세력도 이번에 반드시 연대하고 후보 단일화해야 합니다. 연대하려면 지분을 줘야죠. 나눠줘야 합니다. 권력게임이거든요.”

-야권은 어떻게 될 거 같습니까.
“노무현 시나리오를 재현하려 하겠죠. 노 대통령 때처럼 호남 95%, PK 30%에다 충청 표를 끌어들이는 전략 말입니다. 우리 새누리당은 거꾸로 호남 표를 얼마나 끌어들이고 야당에 갈 PK 표를 얼마나 줄이느냐, 뭐 이런 게임 아니겠어요.”

-현재 거명되고 있는 야권 후보 중 누가 가장 유력하다고 봅니까.
“문재인씨는 의지가 약해요. 만난(萬難)을 헤치고라도 기필코 대권을 잡겠다는 식으로 권력 의지가 강해야 되는데. 또 노무현 업보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도 핸디캡입니다. 저는 김두관 경남지사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의지도 강하고 도지사도 잘한다는 소리가 많이 들려 만만찮습니다. 그를 만나고 나면 다들 괜찮은 사람이라고 평하게 된다네요. 손학규·정세균 전 대표 등은 PK 출신이 아니어서 어려울 거예요.”

-새누리당으로선 어떤 구도가 가장 힘들까요.
“박원순 시장이 당선된 지난번 서울시장 선거 같은 구도죠. 안철수 교수가 출마한다고 하다가 막판에 야당 후보를 밀어주거나, 안철수 후보로 단일화되는 그런 시나리오라면 아마도 아주 힘든 싸움이 될 겁니다.”

-작금의 통합진보당 사태를 어떻게 보십니까.
“숨어있던 종북세력이 드디어 드러난 거죠. 주사파 핵심 세력이 국회에까지 진출하게 됐으니 큰일입니다. 18대엔 국회 본회의장에서 최루탄이 터졌는데 19대엔 최루탄 당사자는 물론 그런 사람이 열댓 명 들어왔잖아요. 최루탄이 아니라 수류탄이라도 터트릴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과 손을 잡아 국회 진출 길을 열어준 민주통합당의 책임이 큽니다. 저들과 연대하여 민주당이 집권했을 경우를 상정해보십시오. 연대의 대가로 지분을 줘야겠죠. 노동부 장관 또는 복지부·환경부 장관을 좌파 세력이 차지한다고 할 때 우리나라 경제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민주당은 그동안에도 연대한답시고 좌파 세력에게 휘둘려 자기들이 추진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제주 해군기지 건설까지 반대했잖아요.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합니다. 솔직히 민주당이 저들과 연대를 계속하는 게 우리한텐 유리하긴 합니다만….”

-이명박 정부를 평한다면.
“이 대통령은 일 잘 했습니다. 문제는 국가 질서를 유지해야 할 공권력 행사를 제대로 못했고, 또 홍보도 잘 못한 겁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박아놓은 대못을 초반 힘있을 때 확 뽑았어야 했는데 그걸 못한 게 잘못이에요. 광우병 촛불시위에 겁먹어서… 그때 차라리 침묵했으면 좋았을 걸 ‘아침 이슬’ 어쩌고 하며 약세를 보인 게 특히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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