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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 배달도 안 되는 ‘장밋빛’ 경제자유구역

조인스랜드

입력

[최현주기자] 따르릉~ ♩♬♪

“네, OO치킨입니다~”

“치킨 주문하려고 하는데요, 후라이드 반하고 양념 반 되죠?”

“네, 후라이드 반 양념 반 갖다 드리겠습니다. 주소가 어디시죠?”

“여기 운서동 XX아파트 105동 602호에요.”

“아, 손님 죄송합니다. 거기까지는 배달이 안 돼요.”

“예? 배달이 안 된다구요? 무슨 소리에요.”

“오토바이로 가는데만 15분이 넘게 걸려서요. 왔다 갔다 30분이 넘게 걸리는데 배달하는 사람이 1명 밖에 없어서 힘드네요. 죄송합니다.”

(목소리 톤이 올라가며)“그럼 어쩌라는 거예요! 거기가 제일 가까운 치킨집인데.”

“죄송합니다, 손님….”

올 초 인천 중구 영종도로 이사간 신모(63)씨는 요즘 불만이 많다. 작은 사업체를 운영하다가 경영난으로 사업을 접고 경기도 부천시 중동신도시에서 이곳으로 이사왔는데 불편한 점이 이만저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씨가 노후를 지낼 장소로 이곳으로 고른 이유는 무엇보다 싼 전셋값과 바다‧녹지 조망 때문이다.

신씨의 말을 들어보자.

“자식 셋을 결혼시켜서 손자만 4명이에요. 사업을 접었다고는 하지만 집 크기를 줄이기는 싫었어요. 직계 가족만 모여도 12명인데 일년에 몇 번 안 모이더라도 집은 좀 넓었으면 싶더군요. 며느리•사위도 있는데 마지막 체면인 것 같고….

집을 찾다 보니까 영종도가 눈에 들어오더라구요. 주변 환경은 좋잖아요. 바다 조망도 되고 녹지도 많고…. 무엇보다 전셋값이 싸죠. 지금 전용 130㎡형에 1억2000만원에 전세 들어왔어요. 가족들도 처음에는 별장에 놀러 온 것 같다며 좋아했죠.”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생활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1기 신도시인 중동신도시에서 20여년간을 살았기 때문일까. 생활기반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예상보다 심각하게 느껴졌다.

“대형마트는 기대하지 않았지만 마땅한 미용실도 없을 줄은 몰랐어요. 아내도 저도 나이가 들어서 병원 갈 일도 많은데 안과 한번 가려면 차를 타고 인천 도심으로 나가야 해요. 지금 사는 아파트가 2002년에 입주한 아파트거든요.

단지 내 마트도 구멍가게 수준이고…. 얼마 전에 초등학교 2학년인 손주 녀석이 놀러 와서 치킨을 시켜달라는데 배달을 안 해준다는 거에요. 멀다고…. 가족들 앞에서 얼굴이 화끈하더군요.”

부동산 경기 침체의 직격탄을 맞은 인천 영종지구. 최근 경매시장에선 영종지구 아파트가 반값에 팔려나가며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지지옥션에 따르면 운서동 A아파트 148㎡형(이하 전용면적)은 감정가(6억)의 절반에 못 미치는 2억9400만원에 낙찰됐다.

지지옥션 관계자는 “권리상 하자도 없었고 별다른 문제가 없는 깨끗한 물건이었는데 너무 싸게 낙찰돼서 조금 놀랐다”며 “그나마 지난해 말까지는 낙찰자가 있었지만 요즘은 경매에 나오는 물건은 쌓이고 찾는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지난 2년간 전국을 뜨겁게 달궜던 전세난도 영종지구는 피해갔다. 섬 전체에 중소형은 별로 없는 탓이다.

섬이라는 입지적인 특성 때문에 전세유입이 쉽지 않은 영향도 있다. 현재 영종지구 내 아파트 전셋값은 시세도 가늠하기 어렵다.

84㎡형 이상은 1억~1억2000만원선으로 크기에 상관없이 전셋값이 비슷하다. 2009년과 비슷한 수준이고 대형은 오히려 전셋값이 떨어졌다.

아무리 섬이라는 입지의 한계가 있지만 전셋값이 싸고 수도권에서는 손에 꼽히는 바다 조망이라는 특권을 누릴 수 있는데 왜 이렇게 주택 수요자들에게 외면 당하나, 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신씨의 말을 들어보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현재 영종지구 내 상업시설은 공항신도시(운서동)에 모여 있다. 그나마도 공항 이용객을 위한 숙박시설이나 편의점 등이 대다수다. 지역 내 주민을 위한 생활필수업종이 부족하다.

신씨의 한마디다.

“나른한 주말 저녁 좋아하는 드라마를 보며 치킨 한 마리 배달시켜 먹을 수도 없는 생활환경인데 전매제한 풀고 DTI 푼다고 주택시장이 좋아지겠습니까. 그런 정책 백번 내봐야 소용없어요. 왜 사람들이 집을 안 사려고 하는지부터 살펴야죠.

정부에서 주도하는 경제자유구역이라더니 이게 뭔지…. 이러니 정부가 뭘 한다고 발표해도 별다른 약발이 안 먹히는 거에요.

개발이 될지 안될지 모르고 또 언제 바뀔지 모르니까. ‘거짓말쟁이 정부’ 학습효과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저는 전세로 들어와서 다행입니다. 반년도 채 안 살았는데 이사 나가야 할 것 같아요.”

<저작권자(c)중앙일보조인스랜드. 무단전제-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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