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골랐어요] 덩치 커진 아동출판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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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책을 고를 때, 제가 가장 신경 쓰는 것 중 하나는 '만드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가' 하는 것입니다. 어떤 시각으로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는지, 굳이 어린이 책을 만드는 까닭이 무엇인지에 따라 출판물의 성격은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1988년 '백두산 이야기' (통나무)가 나올 때만 해도 우리나라 창작 그림책 분야는 황무지나 다름없었습니다. 무관심 속에서도 이 획기적인 그림책은 절판되지 않았고, 일본의 그림책 전문 출판사인 후쿠잉캉쇼텐(福音館書店)에서 번역 출판되어 호평을 받은 것뿐만 아니라 이제는 우리나라에서도 더욱 더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얼마 전부터 어린이 책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늘어났어요. 웬만한 기업도 문을 닫는 상황에서 기존 출판사뿐만 아니라, 신생 출판사도 앞다투어 어린이 책 출판에 뛰어드는 기이한 현상까지 보입니다.

그 덕분에 지난 한해 동안 얼마나 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왔던가요. 반가우면서도 무척 곤혹스러운 일입니다. 어린이 책을 만드는 목적이 단지 '비어 있던 시장' 을 선점하려는 것이라면 말입니다.

전집류 일색이었다가 단행본, 그것도 창작물의 비중이 높아지고 이에 힘입어 빠르게 어린이 책 시장은 커졌습니다. 이렇게 되다 보니 요즘은 국제 도서전에서 서로 외국 책을 들여오려고 국내 출판사끼리 경쟁한다는 소식으로 우울할 지경입니다.

좀 더 거칠게 말한다면 창작물을 내겠다는 노력은 전혀 없이, 번역서 위주로 출판하는 것은 다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들고 나타나는 꼴입니다. 번역 출판의 중요성을 무시하는 말이 아니란 것쯤은 다 알 것입니다.

적어도 어린이 책을 만든다면, 아이들에게 좋은 책을 주겠다는 '불타는 사명감'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책임질 수 있는 출판물을 내겠다는 의지가 있는가 묻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짧은 시간 안에 큰 돈 들이지 않고 대박(?)을 터뜨리고 싶다면, 어린이 책말고 다른 책 만들기를 바랍니다. 어린이 책은 투자비용도 비용이지만, 많은 노력과 인내를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또 지금까지 만든 책 중에 돈은 되지만 아무 '영양가' 없는 책이 있다면 미련없이 절판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다시 새롭게 시작해 주세요.

새로운 한해를 시작하면서 참된 마음으로 만들어낸 책임감 있는 어린이 책을 기대하고 또 기대하겠습니다. 그러면 다음에는 더 구체적으로 어떤 출판사의 책을 고르면 좋겠는지 살펴보도록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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