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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 결혼, 베버의 방식 사르트르의 방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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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지성인의 결혼
 한넬로레 슐라퍼 지음
김선형 옮김, 문예중앙
328쪽, 1만5000원

흥미로우면서도 진지한 책이다. 흥미롭다는 것은 등장인물의 내밀한 삶을 엿볼 수 있는 덕분이다.

 사회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막스 베버는 아내 마리안네와 ‘동반자적 결혼’을 꿈꿨다. “나는 당신에게 엄격할 것이고 당신을 봐주지 않을 것이오”라고 했던 그는 아내가 무슨 책을 읽는지 틈틈이 확인했고 자신의 강의를 듣게 했다. 덕분에 마리안네 베버는 여성해방운동의 선구자가 됐다. 하지만 정욕을 억누르지 못했던 베버는 자신의 첫 여제자 엘제 야페와 연인관계였다.

 대학교수의 아내였던 엘제 야페는 성 해방주의를 부르짖던 정신분석학자 오토 그로스의 아이를 갖기도 한 신여성이었는데 그녀의 남편이 이 아이를 입양할 때 베버는 그 대부가 됐다. 엘제 야페가 자신의 여동생과 그로스의 밀회를 도왔다는 이야기는 제쳐 두더라도 베버의 임종을 지킨 아내와 연인은 이후 죽을 때까지 함께 살았다.

 베버만 막장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결혼생활을 한 게 아니다. 베버, 극작가 브레히트와 더불어 책의 축을 이루는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도 마찬가지다. 그는 1964년 노벨문학상 수상을 거부한 것으로도 유명하지만 이후 시몬 드 보부아르와의 ‘자유결혼’으로도 1960년대 젊은이의 선망의 대상이 됐다. 1928년 첫 만남에서 80년 사르트르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서로 동등한 권리를 존중하면서 결혼은 하지 않은 이 세기의 커플은 한때 이상적 남녀관계의 대명사로 꼽히기도 했다. 상대방이 다른 사람과 육체적 관계를 맺는 것까지도 용인한 이들의 이야기는 꽤 널리 알려졌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사후 출간된 사르트르의 편지집에 따르면 “사르트르는 늘 여러 여자들에 둘러싸여 살았던 마초였고, 자신의 곁을 지킨 여자에게는 너무나 많은 부당한 요구를 늘어놓았다.” 예를 들면 이 커플은 보부아르의 제자인 올가 코사카에비츠를 두고 각각 에로틱한 관계를 맺었으며 이 ‘트리오’는 사회의 기초가 되는 결혼과 가족에 대한 도전으로 해석됐다.

 독일 뮌헨대의 독문학 교수를 지낸 저자는 이들 커플의 사회적·문화적 의미를 풀어냄으로써, 그렇고 그런 지성사의 가십 모음에서 벗어난다. 지은이에 따르면 서구에서 전통적 결혼에 대한 ‘도전’은 1880년부터 1920년 사이에 작가·예술가·학자 등 소규모이지만 말발 센 지성인들에 의해 시도됐다. ‘두 사람 사이의 관계’나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행복이란 측면에서 결혼을 조명하기 시작했다는 설명이다.

 지은이는 영혼과 육체의 다양한 조합을 모색한 인물들의 사례에 더해 ‘결혼의 예비학교’로 연애소설 등 여러 문학작품에 묘사된 결혼의 모습을 살폈다. (조지 엘리엇의 소설 『미들 마치』 등 아직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작품을 접하는 덤을 누릴 수 있다.) 이들의 실험이 ‘다른 방식의 결혼’에 대한 정답은 아니지만 이들 덕분에 이제는 결혼이라는 제도가 평등과 이해, 그리고 개방성이라는 토대를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두 알게 됐고 지적한다.

 모든 것은 변한다. 결혼도 마찬가지다. 일례로 주례 앞에서 “죽음이 두 사람을 갈라놓을 때까지 아끼고 사랑하겠다”고 맹세하는 젊은이들은 이제 평균 수명의 연장으로 40~50년간 변치 않아야 한다는 약속을 하는 것임을 얼마나 의식할까. 결혼을 해야만 얻을 수 있는 성생활, 자녀, 주거공동체, 사회적 접촉 등을 다른 것, 다른 곳에서 얻을 수 있는 마당에. ‘5월의 신부’를 운운하기 전에 차분히 읽어 볼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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