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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째 신용불량자, 어떻게 저축은행 회장님 됐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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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회장님’은 신비로운 인물이었다. 누구도 그의 고향을 정확히 알지 못했다. 누군가는 충남 예산군이라 했고, 또 다른 이는 충남 아산시라 했다. 그의 학력을 정확히 아는 이도 없었다. 스스로 “검정고시 출신”이라 했다. 회사 직원 중 하나는 “초등학교만 나왔다는 소문이 있지만, 그걸 어떻게 여쭤보겠느냐”고 했다.

 영업정지 뒤 조금씩 드러난 김찬경 미래저축은행 회장의 ‘실체’는 상식을 초월한다. 금융 당국에 따르면 김 회장은 164억원의 빚을 6년째 연체 중인 채무불이행자다. 30년 전 가짜 서울대 법대생임이 탄로나고도 태연히 동문회에 나왔던 ‘강심장’이기도 하다. 그는 지난 3일 고객 돈 203억원을 인출해 중국으로 밀항하려다 붙잡혔다. 이런 그가 2조원에 가까운 서민 예금을 주물러온 것이다. <관계기사 6, 8면>

 하지만 어떤 흠결도 그가 ‘저축은행 회장님’이 되는 것을 막지 못했다. 돈만 있으면 누구나 저축은행을 인수할 수 있게 한 허술한 감독 때문이다. 외환위기 직전 300여 개에 달했던 저축은행(당시 상호신용금고)은 외환위기 이후 급속히 부실화됐다. 1998년 한 해에만 100여 개가 퇴출돼 흔적 없이 사라졌다. 당시 금융시장 구조조정을 담당했던 한 인사는 “돈만 싸 들고 오면 상호신용금고를 인수할 수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며 “공적자금을 아끼기 위해서라도 인수자가 나타나면 자격을 묻지 않고 부실 금고를 넘겨야 했다”고 털어놨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김 회장은 99년 미래저축은행의 전신인 대기상호신용금고를 인수해 ‘금융회사 오너’가 됐다. 함께 영업정지 된 솔로몬저축은행의 임석 회장은 2002년, 윤현수 한국저축은행 회장은 2000년에 각각 신용금고를 사들이며 업계에 데뷔했다.

다음 단계는 ‘덩치 불리기’였다. 자격 검증은 여전히 생략됐다. 업계의 샛별로 떠오른 이들은 인수합병(M&A)을 통해 회사를 키워나갔다. 당국의 상호신용금고 확대 정책 덕분이었다. 2001년 예금자 보호 한도가 2000만원에서 5000만원으로 늘었다. 2002년엔 이름을 ‘상호저축은행’으로 바꿔줬고, 2006년엔 아예 ‘저축은행’으로 부르게 했다. 2008년엔 ‘부실 저축은행 자율 인수합병 인센티브제’를 도입해 합병을 부추겼다. 이 무렵 부산저축은행은 대전·고려 등의 부실 저축은행을 잇따라 인수해 지방은행을 넘어서는 덩치를 갖게 됐다.

 규모는 커졌지만 규제는 이를 뒤따르지 못했다. 당국은 2010년에 들어서야 상호저축은행에 대해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도입한다. “금융관계 법령 등 위반으로 1000만원 벌금형 이상 형사 처벌을 받은 이는 금융회사 대주주가 될 수 없다”는 게 골자다. 하지만 형식적인 규제였다. 금융감독원은 올 3월 대주주 유지 요건 심사에서 김 회장이 2006년 이후 164억원의 빚을 갚지 않은 채무 불이행 상태라는 것을 발견했다. 하지만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금감원 안종식 저축은행감독국장은 “문제의 위법 사실이 대주주 유지 요건이 신설되기 전에 발생해 소급 적용할 수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홍익대 경제학과 전성인 교수는 “은행은 엄격한 전문성과 도덕성 검증을 거쳐 맡겨야 하는데, 사기 전력을 가진 이들까지 저축은행을 맡고 있으니 비리가 생기지 않으면 이상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한국금융연구원 이시연 연구위원은 “외국에선 금융회사 대주주의 요건으로 ‘도덕성’ ‘신의성실성’ 등 주관적 기준을 내세워 적극적으로 적격성을 판단하게 한다”며 “대주주 적격성 심사가 실효성을 가지려면 심사 기준을 뜯어고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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