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 돈 인출·체포 전혀 몰랐던 감독관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금융당국이 김찬경(56) 미래저축은행 회장의 203억원 인출을 다음 날 아침에야 파악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 회장이 중국행 밀항선 선실에서 체포되고 반나절이 지나서다. 당국은 지난해 부산저축은행 임직원의 사전 인출 파문이 불거지자 “영업정지 이전에 현장 감독을 강화해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게 하겠다”고 다짐했었다.

 7일 검찰과 해양경찰청·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김 회장은 지난 3일 오후 5시47분 서울 서초구의 우리은행 지점에서 현금 135억원과 수표 68억원을 인출했다. 그는 이 돈을 운전기사와 함께 자신의 검은색 벤츠 승용차에 싣고 어디론가 떠났다. 경기도 화성시 궁평항의 중국행 밀항선에서 붙잡힌 건 2시간40분 뒤인 오후 8시30분쯤이다. 하지만 저축은행에 나와 있던 금융감독원과 예보의 파견감독관들은 이를 까맣게 몰랐다. 감독관들은 3일 저축은행의 영업이 마감된 뒤 장부를 확인하고 이상이 없자 퇴근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 날 아침 출근해 재확인해보니 ‘마감 후 거래’로 203억원이 빠져나간 사실을 발견해 곧바로 경찰에 신고하고 지급정지를 요청했다”는 게 금감원의 설명이다. 돈이 인출된 지 14시간, 김 회장이 체포된 지 반나절이 지나서야 감독관들이 ‘203억원 실종’을 알아챈 셈이다. 감독관들은 또 김 회장이 법인 통장과 인감을 우리은행 지점으로 들고 나가 비밀번호를 바꾼 사실도 다음 날 확인했다.

 금감원은 이를 ‘금융을 잘 아는 김 회장의 지능적 범행’이라고 해명했다. ‘마감 후 거래’에 관한 정보는 당일이 아닌 다음 날 아침에야 공유되는 점을 이용해 인출 사실을 감추려고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금감원이 ‘불량 대주주의 막장 인출’을 막지 못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저축은행 명의의 은행 계좌와 거래 지점은 기껏해야 두세 군데”라며 “이들과 정보 채널을 만들어뒀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