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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지붕 세 가족자연과 어우러진내 집 마련의 꿈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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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9호 29면

1 프린스 하우스 전면. 왼쪽에는 85㎡의 주택, 오른쪽 1층은 36㎡의 스튜디오, 그리고 우측2층과 다락을 함께 쓰는 복층형 주택이다

자기 집을 짓고 산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한 일이다. 최근 30, 40대 부부들이 땅콩집에 열광하는 이유다. 아파트의 삭막함이나 단독주택의 부담감에 고민하다 보면 다소 저렴한(?) 모드의 땅콩집이 충분히 새집 마련의 대안이 된다. 한 주머니에서 두 알이 나오고 한 껍질 속에서 가지런한 두 조각이 나누어진다. 비정한 도시 생활에 지쳐가는 즈음, 등 기대고 따뜻한 이웃이 있는 우리 가족의 집이라니! 참으로 매력적이다. 어느새 외콩집도 생겨나고, 심지어 땅콩 밭(단지형 마을)까지 생겨나는 등 전국적으로 500여 채가 건립 중에 있다. 얼마나 폭발적이었으면 창시자라 할 수 있는 이현욱(광장건축 대표)씨는 더 이상의 작업을 포기한다고 선언까지 했을까.

최명철의 집을 생각하다 <2> 찰스 왕세자의 땅콩집

지난해 5월 런던 교외에서 찰스 왕세자가 지었다는 원조 ‘땅콩집’을 보았다. 녹색 도시, 녹색 건축의 화두를 안고 유럽의 새로운 사례들을 답사하던 중의 일이다. BRE(Building Research Establishment)연구소에서 2005년부터 조성하고 있는 이노베이션 파크에서다. BRE는 1921년 정부에서 세웠고 97년부터 민영화해 건축환경에 관한 설계, 컨설팅, 테스트를 전담하는 최고의 연구기관이다. 특히 그린 홈 시범단지인 이노베이션 파크는 20여 개 다국적 기업이 1000만 파운드(약 180억원)를 들여 조성한 12개 모델하우스와 친환경 단지 조경으로 구성돼 있다. 런던 북쪽 교외 왓퍼드(Watford)에 있는 이 단지는 최근 들어 세계적인 녹색 성장의 모범으로 주목받고 있다. 리커창 중국 부총리 등 지금까지 약 100만 명의 방문객이 다녀갔다. 한국도 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녹색성장을 새로운 국가발전의 돌파구로 천명하고, G20 산하 기관으로서 GGGI(Giobal Green Growth Institute)를 제안해 주도하고 있다.

2 2층 실내 3 2층 테라스에서 본 건물 입구. 전통적인 자연 재료와 시공기술을 사용한 서민형 주택이다.4 2층 발코니

산업사회 이후 인류 문명은 과학과 기술의 힘으로 자연을 극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정복 단계에 이르러서야 자연 파괴의 재앙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그동안의 성장 패러다임 속에 머물러 있어서인지 ‘자연을 챙겨주는 선에서의 개발성장’쯤 되는 모순적 형태로서 녹색성장의 길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역사적으로 볼 때 새로운 패러다임의 실행에 있어서는 항시 근본적인 성찰이 요구되며, 더욱이 성장과 연계한 조급한 사업들은 냉정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5 이노베이션 파크 메인 광장에서 바라본 프린스 하우스. 3세대 공동주택이다.

이노베이션 파크에 있는 실험 대상 모델하우스 중 하나인 왕세자의 땅콩집(프린스 하우스)은 녹색성장과는 무관하다. 건축 환경을 위한 왕세자재단(The Prince’s Foundation)은 일찍이 수많은 건축 관련 작업들을 꾸준히 실행해오고 있다. 이번에도 새로운 친환경 국민주택에 관해 구체적 목표를 천명하고 2009년에 시작, 2011년 3월에 개관했다. 이름하여 자연의 집(natural house)이다. 12채 중 따로 떨어져 있어 우아한 형태의 권위를 드러낸다.

6 거실 7 침실

찰스 왕세자가 주창하는 복고주의에 맞춰 영국 조지아 양식의 저택을 본뜬 외관으로 전통적인 좌우대칭형이다. 자연환경에 순응해 함께 숨쉬는 자연의 일부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되, 내부 공간은 현대 생활에 맞게 설계했다. 한 지붕 아래 좌측엔 전용 85㎡의 주택, 우측 1층은 전용 36㎡의 스튜디오, 우측 2층과 다락은 73㎡의 메조네트로 구성된 3세대 공동주택이다.

서민을 위한 소위 국민주택 규모의 땅콩집으로 전통적 자연 재료와 시공 기술을 사용해 값싸고 손쉽게 저탄소, 저에너지, 저비용이라는 ‘3 less’ 목표를 구현하고 있다. 더구나 두터운 다공질의 점토 블록을 개발해 자연 환기·단열 등 패시브 시스템으로 습기와 곰팡이를 제거하고 천식이나 호흡기 질환·아토피·피부염 유발 원인을 차단하는 데도 기여하고 있다. 자연 재료 또는 재활용 경량 자재 및 물받이 블록의 사용 등으로 자원의 통합적 리사이클링 또한 목표다.

영국 건축계에선 일찍이 찰스 왕세자의 건축 비평이 유명하다. 항상 황실의 입장에서 복고주의를 천명하고 모더니즘에 대해 반대 입장을 취하고 있다. 특히 대규모 개발행위를 반대해 수많은 논란을 일으키곤 한다. 최근에는 작위를 받은 건축가 리처드 로저스경조차도 “노력에 의해 얻어지지 않은 지위를 가진 찰스는 함부로 나서지 말라”는 발언까지 했다. 두 개의 대형 프로젝트를 놓친 후의 일이다. 게다가 『Deconstructing Prince Charles』란 책까지 출판해 논쟁에 불을 붙였다.

어쨌든 왕세자 같은 영향력 있는 인물이 자국의 도시나 건축에 대해 전문적 식견을 가지고 비평하고 그것이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부러운 일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재단은 단순 실험 주택에 머무르는 게 아니라 도시형 집합 형태까지 연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진정한 보급형 국민주택 연구라 할 수 있다. 땅콩집이 땅콩밭으로 이어지듯, 단지나 마을 그리고 도시공간에서 유효하게 실현되기 위한 노력이 병행되고 있다는 것은 본받을 만하다. 전문가들에 의한 가로경관(street view) 연구가 왕세자의 직접적 참여 속에 이루어지는 것은 세계적인 도시경쟁력 시대에 또 하나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라 할 수 있다. 같은 녹색성장의 패러다임 속에서 왕세자의 땅콩집과 우리나라의 4대 강 사업이 비교되는 것은 한국인의 자격지심일까.

주거문화의 다양성은 생태계의 종 다양성 이상으로 필요한 시대가 된 것 같다. 지속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현재의 삶을 규정짓는 것 또한 부질없는 것 같다.
다만 우리나라의 땅콩집 신드롬은 혹 거품은 아닌지, 땅콩집의 성공이 과연 땅콩밭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 한국의 지속가능한 국민주택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 보다 치밀한 연구가 필요하다. 그저 남의 나라의 부러운 일로만 쳐다볼 때는 아닌 것 같다.



최명철씨는 우리가 살고 잇는 집이라는 공간의 다음 단계를 생각하는 건축가다. 이 같은 생각을 갖고 국가건축 정책위원으로 활동했다. 단우건축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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