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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운구의 쉬운 풍경 8] 풀빛과 어울려 더 고운 산벚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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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경상남도 창녕군 관룡산, 1991. ⓒ강운구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니 대뜸 꽃부터 피우는 것들은 꼭 조숙한 천재라거나 아니면 성질이 급해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그건 살기 위해서, 종족을 퍼트리며 살아남기 위해서 그런다. 키 작은 풀이나 나무들은 큰 나무들도 저 살기기 바빠서 그 곁의 작은 생명들에게조차 자비심 같은 건 베풀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큰 나무들을 피해서 숲의 가장자리나 빈 곳에 자리 잡게 된 작은 풀이나 진달래 같은 나무들이 서둘러서 꽃부터 피우는 것은 그래서, 이웃의 큰 나무들이 무성한 그늘을 만들기 전에 서둘러 중요한 일을 해 버리려고 그런다. 물과 빛을, 큰 나무든 작은 풀이든 뿌리 내린 자리에서만 받아들여야 하는 숙명은 가까운 이웃일수록 어느 한쪽이 말라 버릴 때까지 다툴 수밖에 없게 한다. 숲의 나무들은 피를 안 흘릴 뿐 동물보다 더 집요하게 오랜 기간을 경쟁한다. 그래서 빽빽한 숲의 나무들은 기어코 다른 나무들의 그늘에 안 들어가려고 기를 쓰고 뻗어 올라서 다 호리호리하게 키만 크다. 그런 숲의 그늘에서는 풀도 살지 못한다. 그러나 그런 공존은 평화롭고 아름답게 보인다. 숲은 오월의 신록일 때가 가장 보기 좋다.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던 벚나무들은 이른봄의 며칠 동안 확 핀 꽃으로, 장미과의 이 종족도 조금씩 모양이 다르게 열 몇 가지나 되며, 뜻밖에도 여기저기 많이 있다는 존재증명을 하고 사라진다. 그런데 몸이 커다란 벚나무가 뭐가 급해서 체신머리 없이 수많은 꽃부터 피우게 하는지는 알 수 없다. 설마 꽃 그늘을 만들어서 제 그루터기 가까이엔 진달래뿐만 아니라 노루귀 얼레지 제비꽃 같은 작은 풀들조차 접근하지 못하게 하려고 그러는 것일까? 아무튼 줄지어선 왕벚꽃이 도시나 관광지를 휘황하게 휘몰다 지나가고 나면 산에서 산벚꽃이 피기 시작한다. 산벚나무는 그래도 좀 체면을 차리느라 작은 풀꽃들과 진달래꽃이 중요한 일을 마친 뒤에 져 가고, 다른 종의 여러 나무들이 잎을 틔울 때 비로소 잎과 꽃을 거의 함께 피운다. 그 꽃 빛깔은 생명감 넘치는 풀빛과 어울려서 더 곱다. 이럴 때가 진짜 봄이다. 도시에 줄지어 서있는 왕벚나무의 꽃은 어쩐지 인공의 가짜라는 느낌이 들지만 산벚꽃은 풀빛과 어우러져 더 돋보인다. 꽃과의 거리, 아니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바라보는 거리가 알맞을 때 잘 보인다.

전쟁사진을 ‘발명’한 로버트 카파는 가까이 다가가다 지뢰를 밟아 이 세상을 일찍 떠났는데 “대체로 사진이 잘 안 된 것은 가까이서 찍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꽃도, 세상과도 알맞은 거리를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대상과 알맞은 거리 설정이 잘 보는 방법이다. 찍으려고 보고, 보려고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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