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사의 꿈을 이루려는 아이 이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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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야, 어릴 적 나의 친구 중에 장래 희망이 '모범 운전사'라고 자신있게 이야기하던 친구가 있었지. 그때는 아이들 대부분의 희망은 '대통령'이거나 '용감한 군인'이었어. 그건 대통령의 힘이 다른 어떤 사람의 힘보다 막강하던 잘못된 시절의 생각과 그 막강한 힘에 짓눌려 살던 어른들의 생각이 아이들에게까지 미친 탓이었던 거야.

요즘에 너희 친구들 중의 하나가 만일 장래 희망으로 '대통령'이나 '군인'을 이야기한다면 촌스럽다고 하겠지? 하지만 여전히 장래 희망을 이야기하라면 대개는 다른 사람들보다 좀 색다르면서도 남들의 우러름을 받는 그런 직업을 이야기하기는 마찬가지일 거야. 이를테면, 컴퓨터 프로그래머, 비행기 조종사, 가수 등이 그런 것 아니겠어.

그런 가운데 누구는 아마 '백댄서' '패션 모델' '자동차 정비공' 등을 이야기하기도 하겠지. 그런 이야기를 하면 그 아이들의 부모들은 아마 좋아하지 않으실 거야.

'요리사'가 되고 싶은 초등학교 6학년 남자 아이의 이야기가 있단다. 손두본이라는 이름의 이 아이는 '꿈을 찾아 한 걸음씩'(이미애 지음, 백명식 그림, 문학사상사 펴냄)이라는 장편 동화의 주인공이야. 이 책은 삼성문학상이라는 귀중한 상을 받은 책이기도 하구나.

별명도 요리 이름의 하나인 '손두부'인 이 아이의 장래 희망이 바로 '요리사'인데, 두본이의 부모님들은 모두가 그 희망을 반대하셨어. 두본이와 함께 사셨던 외할머니도 두본이에게 '머시마가 부엌에 들랑거리면 고추 떨어진대이.' 하시면서 두본이가 요리하는 걸 말리셨지.

모두들 자신의 꿈을 이해하지 않는 걸 잘 아는 두본이는 누가 장래 희망을 물어보면 자신의 생각과 달리 '과학자'라고 대답하지. 어른들이 공연히 캐묻는 게 싫었던 거야. 결국 두본이의 장래 희망이 요리사라는 것은 비밀이 되고 말았어.

두본이의 꿈을 어른들이 이해 못한 것처럼 두본이의 친한 친구인 나경이의 꿈 역시 어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거였지. 나경이의 꿈은 헤어디자이너였거든. 나경이의 어머니는 그 꿈 말고 다른 것은 다 용납할 수 있다고 했지만, 헤어디자이너만큼은 안된다고 말리셨지.

두본이와 나경이는 자신들의 꿈이 어른들은 이해 못하는 꿈이라는 점에서 서로 동료 의식을 갖고 친하게 지내면서 서로를 위해주었지. 나경이는 두본이에게 인터넷의 음식 사이트를 찾아서 북마크해 주고, 두본이는 인터넷의 요리 사이트에서 유명한 '요리짱'이 되게 된단다.

어른들이 이해하지 못해도 이 아이들은 자신들의 꿈을 이루기 위해 결코 서두르지 않으면서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갔어. 두본이에게는 요리사였던 외삼촌이 있었는데, 외삼촌에게서 두본이는 요리에 관해 많은 것을 배우게도 되지. 그러다가 결국 두본이는 어머니 몰래 요리학원에 다니게 되지만, 얼마 뒤 어머니에게 발각돼서 호되게 꾸지람을 듣게 되고 학원은 더 이상 다닐 수 없게 된단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은 뒤, 두본이의 생일이 왔어. 그때 두본이는 지금까지 살아온 가운데 가장 큰 선물을 받게 되지. 어머니가 두본이에게 자신의 생일 잔치 상을 차려보라는 부탁을 받는 것. 어머니가 자신의 꿈을 이해해 주고, 그 꿈을 지원해주겠다는 증거 아니겠니. 더 기쁜 일이 뭐 있겠어.

아이야, 옛 어른들 말씀 가운데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말이 있어. 물론 그 당시에는 선비가 가장 훌륭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굳이 '선비는'이라고 했지만, 이는 아마 세상 모든 사람에게 통하는 말이 될 거야. 즉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바쳐도 좋을 것이라는 이야기 아니겠니.

그러나 이 말 가운데에는 숨겨진 뜻이 하나 더 있단다. 즉 자기를 알아주게 하기 위해서 스스로 얼마나 노력해야 하는 지를 전제하고 하는 말이야. 그러니까 다시 말하자면, 자기의 능력과 꿈을 이루기 위해 정말 꾸준히 노력한 사람만이 다른 사람이 알아줄 것이고, 그렇게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가진다는 것은 인생에 가장 행복한 일이라는 이야기야.

아이야, 이 책에서 어린 두본이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는지를 알아보고, 너도 무조건 너를 알아달라고 강떼를 쓸 것이 아니라, 너 자신이 스스로 능력을 갖추고, 그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꿈을 이루기 위해 애쓰는 아이가 될 수 있었으면 정말 좋겠구나.

고규홍 Books 편집장 (gohkh@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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