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특파원
지난주 금요일(27일)자 일본 신문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도쿄지법이 지난달 26일 일본 정계의 실력자 오자와 이치로(69) 전 민주당 대표에 대해 무죄 판결했다는 기사로 온통 채워졌는데, 그 제목과 내용들이 예상 밖이었기 때문이다.
요미우리(讀賣)신문은 사설에서 “백색(무죄)이지만 이는 결백하다는 게 아니고 ‘회색’이라는 게 사법부의 판단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치자금법 혐의로 기소됐던 오자와에 대한 무죄 판결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논조였다. 신문은 또 “유죄와 무죄가 종이 한 장 차이였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아사히(朝日)신문도 마찬가지였다. 사설에서 “어제 (무죄로) 판결된 것은 우리들이 지적한 ‘오자와 문제’의 일부분에 불과하다”며 “재판에서 추궁된 책임과 정치인으로서 져야 하는 책임은 별개”라고 강조했다. 비록 ‘무죄’를 받았지만 정치적 책임을 질 것을 촉구한 것이다. 1면의 사회부장 기명 기사에선 “한없이 유죄에 가까운 무죄 판결이었다”며 “이 재판에 승자 같은 것은 없었다”고 지적했다. 그 밖의 신문이나 방송들의 논조도 대체로 비슷했다.
오자와는 지난 20여 년 동안 일본 정치를 좌지우지해온 거물이다. 그런 공인일수록 철저히 감시하고 의혹을 파헤쳐야 하는 건 언론의 기본 상식이자 의무다. 하지만 그 또한 어디까지나 ‘사실’을 전제로 해야 함을 소홀히 했다. ‘오자와 손보기’에 나선 검찰의 의도적 ‘흘리기’에 덩달아 춤췄다. “~의 냄새가 진하게 난다”는 것만으로, “원래 깨끗한 정치인이 아니다”라는 이유만으로 ‘유죄 추정 보도’로 흐르고 말았다.
지난달 26일 도쿄지법 앞에서 일반 시민들에게 ‘무죄 판결’ 반응을 물었다. 놀랍게도 대부분이 “언론에 속았다”는 대답이었다.
그럼에도 일 언론들은 여전히 “오자와! ‘설명 책임’을 이행하라”고 연일 촉구한다. 무죄가 됐다지만 어떤 경위로 이번 사안이 발생했고 뭐가 잘못됐던 것인지 국민 앞에 제대로 설명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기자의 눈에는 정작 ‘설명 책임’을 다해야 할 주체는 일본 언론이 아닌가 싶다. 어떤 근거로 독자들에게 ‘유죄 추정’ 보도로 일관했는지 이 시점에서 반성하고, 또 설명해야 하는 것 아닐까. 단순한 ‘오자와 이지메’였다는 비난을 받지 않으려면 말이다.
더불어 정치인 비리다, 광우병 사태다 쉴 새 없이 뉴스가 터져 나오는 한국에서도 언제부터인가 ‘유죄 추정’의 분위기가 자연스레 자리 잡고 있는 건 아닌지 돌이켜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