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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두점머리 급소를 놓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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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준결승 2국>
○·구리 9단 ●·나현 초단

제3보(28~37)=바둑은 상대적이다. 내가 편하면 상대도 편하다. 이창호 바둑이 그렇다. 전성기 때 이창호 9단의 별명 중 하나는 솜방망이. 쓰러진 상대가 언제 어디서 펀치를 얻어맞았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데서 붙은 별명이다. 반대로 이세돌 바둑은 날카로운 사금파리와 낭자한 선혈이 떠오른다. 코앞의 사금파리는 얼마나 불편한가. 이세돌 9단은 상대를 한없이 불편하게 한다. 하지만 그 반작용으로 본인도 종종 갈가리 찢겨지는 처참한 상황에 봉착하곤 한다.

 28, 30으로 머리를 내밀자 31로 자세를 잡았는데 이때 구리 9단이 32로 살짝 간을 본다. 바로 이 장면에서 나현 초단은 33으로 젖혔고 바로 이 33이 이 판의 운명을 전혀 다른 길로 인도하고 만다. 우선 이세돌 9단이라면 눈 감고 두점머리를 두드렸을 것이다. 바로 ‘참고도 1’ 흑1의 젖힘인데 백이 2, 4로 눌러가면 흑은 5로 쳐들어간다. 서로 불편하지만 칼칼하게 기세를 살리고 있다(‘참고도 2’ 백2로 절단하면 흑3 젖혀 실전보다 흑이 좋다). 실전은 그냥 33으로 굴복하는 바람에 36을 당했다. 흑도 편하지만 백은 더 편해졌다. 나현은 훗날 두점머리 급소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 이 대목을 크게 후회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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