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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잊고 있던 소중한 것들 새삼 일깨우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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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8호 29면

서너 번의 봄비에 벚꽃들은 다 졌지만, 봄꽃들은 땅에 내려앉은 모습조차 아름답다. 물기 머금은 땅에 속속들이 박혀 있는 흰 꽃잎들을 밟는 일은 떠나가는 화려한 봄날에의 아쉬움을 더욱 짙게 만든다. 아마도 올해의 봄바람과 꽃들은 ‘버스커 버스커’라는 청년들의 노래 덕분에 더 아름답게 기억될 듯하다. 또 많은 시간이 지난 뒤에도 이 노래를 들으면 사람들은 2012년 봄날의 그림들을 다시 떠올리며 추억할 것이다.

컬처 #: '버스커 버스커'가 인기 있는 이유

버스커 버스커의 노래에 대한 전 세대를 아우르는 공감과 환호는 그동안 우리 노래들이 가졌던 거대한 ‘결핍’을 새삼 일깨워 준다. 노래는 청각을 자극하지만, 아름다운 노래는 그 자극된 청각을 통해 또 다른 감각을 일으킨다.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퍼질 이 거리를/ 둘이 걸어요…’.
단순한 코드와 비정형적인 음률로 이뤄진 그들의 노래는 자연스럽게 벚꽃과 봄바람을 맞으며 그 아래를 걷는 연인들의 아름다운 이미지를 머릿속에 떠오르게 만든다. 청각을 통한 시각에의 영감, 국어시간에 배웠던 ‘공감각’이다.

오랫동안 가요들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아름다운 공감각에 영감을 주지 못했다. 반복되는 후크송의 멜로디, ‘삐리 빠빠’ ‘롤리 폴리’ 같은 격음과 경음으로 의미 없는 외침을 내뱉는 노래들 속에서 어떤 심상을 그려내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공허한 청각의 자극이 불러일으키는 시각적 이미지라고는 진한 화장의 인형 같은 얼굴과 핫팬츠 아래로 드러난 긴 다리 정도? 자극을 받는 건 감각과 감성이 아니라 얕은 ‘본능’에 가까웠다.

‘사랑’이란 건 실체가 없는 것이지만 사랑하는 대상과 사랑의 추억들은 현실과 실체를 가진다. 우리는 이유 없이 첫사랑의 ‘통통한 손목’이나 ‘쪼글쪼글 팔꿈치’를 보며 설렜던 기억을 가지고 있고, 그 사람을 ‘꾀어내’ 다른 곳도 아닌 ‘단대 호수’를 걷고 싶었던 기억이 있다. 사랑이 지난 뒤에도 아름다운 항구도시의 ‘밤바다’를 보면서 그 바다의 ‘바람에 걸린/ 알 수 없는 향기가 있어/ 네게 전해주고파 전활 걸어 뭐하고 있냐고’ 물어보고 싶었던 기억이 있다.

버스커 버스커의 노래는 사랑에 실체가 있고 사랑을 나누었던 여수라는 살아 있는 곳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비로소 우리는 사랑을 하면서 꽃을 찾아다녔고, 설레는 마음으로 연인의 손목을 잡고 꽃비가 내리는 거리를 걷고 싶었고, 어색하지만 그 연인을 ‘그대’라고 부르고 싶었던 것, 그리고 그와 함께 가고 싶었던 물리적인 공간이 현실 속에 존재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런 사랑의 감정은 ‘내가 제일 잘났’으니 ‘어서 망설이지 말고 나에게 달려’와 ‘나만 바라보라’는 도전과 정복의 의미로서의 사랑, 혹은 ‘총맞은 것처럼’ ‘죽을 만큼’ ‘미치도록’ 같은 극단적인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사랑보다 느슨하지만 훨씬 현실에 구체적으로 근거한다.

무엇보다 그들의 노래가 편안하게 다가오는 것은 ‘빈틈’이 느껴지기 때문인 듯하다. 보컬 장범준의 약간 비음이 섞인 듯한 목소리는 ‘가창력’의 전형적인 기준을 벗어나지만 울림이 있다. 이미 신세대들에게는 고어가 돼버린 듯한 ‘그대’라는 말에서나, 단순한 몇 개의 코드로 휘리릭 완성한 듯한 그들의 멜로디 역시 여유가 느껴진다. 꽉 짜인 기계적인 편곡, 내지르는 고음 없이 사랑의 감정을 목에 들이밀면서 강요하지 않는 그들의 노래는 조그마한 빈틈도 없이 진행되는 화려한 군무와 화음에서는 느낄 수 없는 낭만과 여유의 아름다움을 품고 있다.

그러니 아름다운 사랑 노래를 만들려면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느끼고, 더 많은 곳을 가보면서 그 속에서 느낀 감정들을 현실 속에서 되새길 수 있는 구체적인 말들로 듣는 이들에게 공감을 일으키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할 것 같다. 우리는 오랫동안 그런 것을 잊고 있었다. 버스커 버스커의 노래는 우리가 잊고 있던, 우리 노래 속에 결핍돼 있던 그런 소중한 것이 있었다는 걸, 이 봄에 조용히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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