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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없는 원조 효과 … 네팔 “약재·수력발전 한국 투자 희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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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박선희 코이카 간호 단원이 네팔 카트만두 밸리 인근 지역 순회 진료를 하면서 현지 주민에게 의료 상담을 해준 뒤 약품을 지급하고 있다. [사진 코이카]

“파라과이는 1960~70년대 한국의 이민자를 받아들인 경험이 있습니다. 총 14만 명 정도가 거쳐갔는데, 지금은 5000명 정도 남았지요. 그간 한국인의 성실함을 놀랍고 부러운 눈으로 봤습니다. 파라과이가 한국의 10%라도 따라잡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2월 20일 파라과이 수도 아순시온 집무실에서 만난 페데리코 프랑코 부통령은 한국과 파라과이의 반세기 인연부터 얘기했다. 한국 원조에 대한 감사의 말 이면엔 한국의 고도 성장에 대한 질투도 섞여 있는 듯했다. 50년 전 농업이민을 보냈던 한국이 이제는 파라과이에 무상원조를 하는 개발원조위원회(DAC) 19개국 중 4위(2010년 1163만 달러 규모)의 부국으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코이카를 포함한 한국의 공적개발원조(ODA)를 말할 때 가장 극적으로 사용되는 표현이다. 한때 지구 반대편 중남미까지 농업이민을 보냈던 한국은 이제 이들 나라에 두 배 세 배의 원조로 갚고 있다. 현지 밀착 한국형 원조모델 ‘친구야(Chinguya)’는 개발 인프라뿐 아니라 미래의 청사진을 제공한다.

  한국의 정보기술(IT)은 기술력 자체를 넘어 선진화한 정부 거버넌스(국가경영)를 상징한다. 한국 IT를 기반으로 나라 전체의 투명성을 높인 몽골이 대표적이다. 부정부패는 몽골 발전의 발목을 잡는 골칫거리였다. 국제투명성기구에서 발표하는 부패지수는 10점 만점에 2.7~3.0점 수준으로 180개국 중 120위를 맴돌았다. 하지만 코이카와 손잡고 정부 전자화사업을 진행하면서 투명성·효율성이 높아졌다. 국가경쟁력도 살아났다. 2005년 코이카와 함께 마스터플랜을 수립할 당시 163개국 중 99위였던 유엔 전자정부 발전지수는 5년 만에 53위(개발도상국 중 1위)로 뛰었다. 타미르 자르갈사이항(33) 몽골 전자정부 부장은 “목표했던 22개 분야 중 19개 사업을 진행 중이고 3개 분야는 시작하는 단계”라며 “ 부정부패도 줄고 능률도 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네팔 트리뷰반 대학의 가나 쉬얌 다와디(경제학) 교수는 “미국은 내정간섭을 전제로 지원하고, 인도는 ‘나를 따르라’는 식의 원조를 하는 데 비해, 한국은 일본과 더불어 순수하게 네팔 발전에 기여해 왔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이제 한국도 네팔에서 뭔가 챙겨갈 생각을 해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 네팔은 아열대 기후부터 히말라야 고산기후까지 분포해 약재가 그만큼 다양합니다. 동양의학 분야에서 한국과 큰 협력을 할 수 있는 거죠. 또 히말라야 산맥의 낙차를 이용해 세계 최대 수력발전소를 건설할 수 있습니다. 중국이 눈독 들이는 사업이지만, 지역 패권을 둘러싼 중국과 인도의 갈등 때문에 시행이 어려워요. 한국 정부의 몫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베트남에서 현지 주민들과 함께 관개수로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코이카 관리요원.

 원조가 ‘윈윈 투자’로 연결되는 사례는 많다.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 인근 카비테주는 외국인 투자유치를 통해 발전하고 있는 대표적인 신흥 산업도시다. 한국 정부는 세 차례에 걸쳐 780만 달러를 들여 카비테주에 한·필 친선병원을 건립하고 진료동을 신축하는 등 지원을 하고 있다. 이 지역 인구 증가율이 매해 5% 안팎에 이르는데도, 보건의료 서비스가 수요에 미치지 못하는 데 주목한 것이다. 이는 한국 기업이 현지에 진출할 수 있는 발판 역할도 할 수 있다. 세실리아 프란시스코 한·필 친선병원장은 “코이카의 원조는 ‘지속적인 지원’이라는 점이 다르다”며 “최근 주(州)정부가 한국의 지자체와 자매결연을 맺고 한국 기업의 활동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는데, 이 역시 코이카가 우리 지역에 계속 도움을 줄 것이라는 점을 믿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세계 각국은 ‘윈윈 투자’를 위한 ODA 경쟁에 한창이다.

아쉬움도 있다. 특히 ODA의 컨트롤타워가 없다는 건 시급히 개선해야 할 점으로 꼽힌다. 한국 정부는 2010년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ODA 정책 심의기구인 ‘국제개발협력위원회’를 신설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업무 분담이 잘되지 않아 중복 지원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네팔에서 만난 한국 공공기관 관계자는 “최근 들어 각종 정부기관들이 한국식 시스템 보급, 기술학교 건립 등의 명목으로 주재관과 인원을 보내 별도 사업을 하고 있다”며 “업무 중복과 행정비용 증가는 물론 현지 관계자들에게도 혼란을 줄 수 있어 원조 창구 일원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절대 원조액은 국제사회의 잣대로 볼 때 증액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 회원국은 국민총소득(GNI)의 평균 0.31%가량을 ODA로 지출하고 있다. 한국은 0.12%에 그친다. 국민 1인당 2만9994원꼴이다.  

특별취재팀=오영환(베트남)·강혜란(파라과이)
유지혜(필리핀)·이현택(네팔)·민경원(몽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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