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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내일을 위해 오늘을 버려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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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최인아
제일기획 부사장

봄과 함께 야구의 계절이 돌아왔다. 야구는 올해 관중 700만 명을 바라보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인기 스포츠다. 한데 야구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이후 올림픽 종목에서 제외됐다. 세계 야구의 중심인 미국 메이저리그가 그 원인을 제공했다는 것이 아이로니컬하다.

 메이저리그는 30개 구단의 가치 총액 18조원에, 한 해 수익만도 7조5000여억원(2010년 기준)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규모다. 또 스타 플레이어의 존재와 출전 유무가 관중 동원과 구단 수입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메이저리그는 소속 선수들의 올림픽 차출을 허락하지 않았다. 당장의 시청률 감소와 선수 부상 등으로 인한 손해를 극도로 꺼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했다면 올림픽은 야구를 전 세계인들의 스포츠로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축구처럼 말이다. 그러나 메이저리그는 당장의 이익을 좇다가 야구를 더 큰 시장으로 퍼뜨릴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저버렸다. 그 결과 야구는 아직도 몇몇 국가에서나 즐기는 스포츠일 뿐 축구의 전 세계적인 인기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현재의 이익에 갇혀 훨씬 더 큰 세계 시장을 놓친 것이다.

 반면 유럽 프로축구 리그는 정반대의 결정으로 성공을 이루었다. 유럽의 축구 리그들은 월드컵과 올림픽, 유로 리그 등을 위한 선수 차출에 적극적이다. 그 덕에 월드컵엔 어마어마한 몸값의 월드 스타들이 국가의 명예를 걸고 총출동해서 경기를 벌이고, 이 경기를 보려는 관중들과 시청자들로 전 세계는 4년에 한 번씩 뜨거운 축구 열기에 휩싸인다. 그뿐만 아니라 유럽의 축구 리그들은 축구 종주국이라는 자존심을 버리고 국적에 상관없이 뛰어난 외국인 선수들을 적극 영입해 평소에도 최고의 경기를 관중들에게 선사한다. 이렇듯 안방을 기꺼이 내주고 전 세계 시장을 석권했다.

 물론 현재는 중요하고 현재의 성공도 매우 소중하다. 하지만 현재는 영원하지 않으며 영원한 성공 또한 없다. 그러므로 앞으로 다가올 긴 미래를 위해서는 현재의 성공을 잊고서 계속 변화를 시도하고 도전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개인이나 스포츠뿐만 아니라 기업도 다르지 않다. 필자가 속한 회사도 미래를 위한 도전을 부단히 진행 중이다. 광고대행사로서 광고를 만드는 일을 넘어 브랜드 컨설팅이나 콘텐트 개발, 전 매체를 아우르는 마케팅 통합 솔루션 개발 등 새로운 도전들을 하고 있고 이제 열매도 맺고 있다. 우리가 가장 잘해 왔고 잘할 수 있는 ‘광고 만들기’만 해서는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하루하루 달라지는 소비자들에게 다가갈 수 없게 될 것이기에 간 길이었다.

 세계 1위 광고대행사인 WPP는 ‘Wire and Plastic Products Plc’라는 제조업체로 출발한 회사다. 하지만 회사의 모태인 제조업을 버리고 글로벌 마케팅 서비스 회사로 거듭나면서 현재는 광고·홍보·조사·마케팅 등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분야의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광고업계에 한정되지 않는다. 한때 PC의 종가로 불리던 IBM은 1980년대 중반 이후 시장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1990년대 후반 수십억 달러의 손실을 보게 되었다. 위기를 느낀 IBM은 사업 구조 재편에 나섰다. 하지만 아쉽게도 기존 사업 분야인 PC와 서버, 프린터 안에서의 변화였다. 이미 시장은 HP와 DELL 같은 업체들이 주도하고 있던 터라 효과는 미미했고 위기는 계속됐다. 결국 IBM은 결단을 내렸다. IBM의 근간이었던 PC 사업을 아예 매각하고 정보기술(IT) 솔루션 사업에 새로 진출했다. 회사의 정체성을 바꿔 가면서까지 택한 어려운 선택이고 큰 도전이었지만 결국은 멋지게 성공, 지금은 세계 최대의 IT 솔루션 업체로 다시금 세계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과거의 성공에만 매달려 혁신하지 않으면 그 성공은 오래가지 않는다. 더욱이 지금은 당장 내일 어떤 변수가 새로 튀어나와 판도를 뒤흔들지 모르는 불확실성의 시대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의 성공이 지속될 수 있는지 늘 질문을 던지고 변화할 수 있어야 한다. 설사 그 질문의 답이 현재의 성공을 버리는 것이라고 해도 말이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때 기존의 틀에 갇히지 않고, 지금 누리고 있는 모두를 버릴 수 있을 만큼 도전에 열려 있느냐는 것이다.

 축구 중계를 보다 보면 종종 듣게 되는 말이 있다. ‘공격이 최상의 수비’라는 말이다. 이기고 있는 팀이 점수를 지키려고 수비에 치중하다 보면 오히려 역습을 허용해 실점을 하는 수가 많다고. 그러고 보니 이치는 다 같은 가보다. 지키려 들면 놓치고, 버려야 얻게 되니 말이다. 세상 이치가 참 오묘한 것 같다.

최인아 제일기획 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