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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크 납실 때 경호원 캐디백 속엔 기관총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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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7호 19면

골프를 무척이나 사랑했던 아이젠하워 전 미국 대통령이 생전에 손자 데이비드에게 골프 스윙을 가르치고 있다. [중앙포토]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롤 모델로 삼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1890~1969) 전 미국 대통령이 주목받고 있다.
아이크(아이젠하워의 애칭)는 골프를 매우 좋아한 대표적인 골프 대통령이다. 특히 마스터스를 여는 오거스타 내셔널의 회원으로 클럽에 애정이 많았다. 아이크는 이 골프장에 가느라 미국 대통령의 연례 행사였던 메이저리그 워싱턴 내셔널스 홈 개막전 시구를 빼 먹기도 했다.

오거스타를 사랑한 대통령, 아이젠하워

오거스타 내셔널에는 그의 이름을 딴 별장과 호수 등이 있다. 17번 홀 왼쪽 페어웨이 옆에 있는 거대한 소나무도 아이크의 이름을 땄다. 최경주가 “이 나무 때문에 17번 홀 티샷이 무척 힘들다”고 하는 나무다. 지난해 마스터스에서 타이거 우즈는 티샷이 이 나무에 맞고 떨어져 쭈그리고 공을 치다 다리를 다치기도 했다. 아이크도 이 나무가 자신의 티샷을 번번이 가로막아 베어버리라고 했다. 이 나무가 아직도 건재한 건 마스터스를 세계적 대회로 만든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장의 전 회장 클리퍼드 로버츠가 반대했기 때문이다.

로버츠는 아이젠하워의 최측근이었다. 아이젠하워가 1952년 대선을 치를 때 로버츠가 가장 가까이 있었다. 아이크가 55년 심장마비를 일으켰을 때 대통령 수행비서로부터 가장 먼저 연락을 받은 사람이 로버츠였다. 두 사람 모두 아첨꾼을 극도로 싫어했다. 당연히 로버츠는 아이젠하워에게 할 말을 했다. 그는 대통령의 명령을 거역하고 나무를 베지 못하게 했다.

오거스타 17번 홀 왼쪽에 있는 아이크 나무(드라이버가 있는 쪽). 

아이젠하워는 로버츠를 신뢰했고 개인 재정 등 많은 것을 맡겼다. 아이젠하워 재임 시절 백악관엔 로버츠를 위한 방도 있었다. 로버츠는 68년 컬럼비아 대학의 구술(口述) 역사센터에서 아이크에 관해 방대한 기록을 남겼다. 녹취록 900장가량의 기록은 로버츠의 사후 20년이 된 97년 공개됐다.

1952년 미국 대선에서 아이젠하워는 공화·민주 양당의 영입 제안을 받으면서도 입장을 밝히지 않다가 뉴햄프셔 프라이머리가 진행되는 당일에야 공화당 후보로 출마한다고 밝혔다. 국내 언론 보도에 따르면 아이크는 양당 중 어디가 자신에게 유리할지 끝까지 재다가 최종 순간에 결정을 하는 기회주의적인 인물로 묘사된다.

그러나 오거스타 내셔널은 그를 다르게 본다. 아이젠하워의 대통령 출마 여부가 이슈로 떠오른 것은 1948년 대선이었다. 아이크가 오거스타 내셔널을 처음 방문했을 때다. 군 생활 때문에 30년 동안 30번이 넘는 이사를 다녀야 했던 아이크 부부에겐 10년 만에 첫 휴가였다. 부부는 사람들을 피해 쉴 수 있는 이 클럽을 안식처로 여겼다.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그의 절친이 됐다.

당시 클럽 회원들은 그해 대선에 전쟁 영웅의 출마를 강력히 원했다. 아이젠하워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지인들이 “아이크가 대선에 나갈 것”이라고 말하자 이를 매우 황당하게 생각했다. 아이크는 당시 나라를 위해서는 충분히 일했고, 이제 퍼블릭 서비스에서 해방될 때라고 여겼다고 로버츠는 전한다.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장을 방문한 것도 아이크가 일반인으로서 생활을 만끽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1949년 가을에 쓴 아이젠하워의 일기엔 이런 기록이 있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아직도 내가 나라에 의무가 있는 것처럼 여기는 생각들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1952년 대선에서도 아이크는 애매한 태도를 취했다. 역사가들은 그의 태도가 신비주의 비슷한 의도된 마케팅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나 로버츠는 1968년 “그가 대선에 나가기 싫어했던 것은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만큼 명확하다”고 주장했다. 로버츠도 아이크가 대통령 선거에 나가기를 기대했으나 설득되지 않을 것도 알았기 때문에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로버츠는 아이크가 출마하게 될 상황은 단 하나, ‘내가 없으면 국가 전체가 피곤한 상황이 된다는 확신’이 생겼을 때였다고 했다. 그 확신이 들자 아이크는 여론조사의 약세에도 불구하고 출마를 선언하고 나가 이겼다.

오거스타 내셔널 멤버들 중엔 부자들이 꽤 있었다. 민주당 측에선 아이크가 그들의 후원을 받기 위해 정략적으로 클럽에 가입했다고 의심하기도 한다.
실제로 아이크는 대선 기간 중 큰 도움을 받았다. 로버츠를 포함한 오거스타 내셔널 클럽의 회원들이 정치자금 모금 운동원으로 헌신했다. 너무 많은 돈을 모아 대선 후 25만 달러를 돌려주기도 했다. 불법도 있었다. 클럽의 한 회원으로부터 25만 달러를 받았다. 너무 큰돈이었기 때문에 현금으로 2만5000달러씩 열 차례에 걸쳐서 은밀히 전달받았다. 로버츠가 이 돈을 세탁했다. 그러나 이런 일은 다른 캠프에서도 흔했고 이 일로 감옥에 간 사람도 없기 때문에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다 해도 아이젠하워가 선거를 생각하고 클럽에 가입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회원을 의도적으로 이용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회원들도 대가를 바라고 운동을 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일부 회원은 아이크가 대통령이 된 후 그의 집 부근에 땅을 사 인기가 많은 아이크가 일반인에게 시달리지 못하도록 완충 지역을 만들어줬다. 재임 중이나 후에 오거스타 회원과 관련된 비리 사건이 드러난 일도 없다. 아이크는 대통령이 된 후 메모에 ‘클럽 회원들은 충실한 사람들이다. 이미 성공한 사람들로서 나를 통해 이득을 보려는 의도가 전혀 없었다’고 적었다.

아이크는 골프 실력이 좋지는 못했다. 그의 두 번째 대선 선거기간에 상대 진영에서는 ‘(대통령으로) 골퍼가 필요하다면 뛰어난 골퍼로 하자. 벤 호건을 대통령으로’라는 스티커를 뿌렸다. 아이크는 웨스트포인트 시절 풋볼을 하다가 다리를 다쳐 스윙이 좋지 못했다. 샷 거리가 짧고 슬라이스를 많이 냈으며 퍼트도 형편없었다. 홀과 너무 멀지 않으면 상대가 “그냥 집어 드세요” 하는 일이 잦았다. 백악관 근처 베데스다 골프장에서 아이크가 골프를 할 때 얘기다. 캐디들끼리 아이젠하워의 타수를 놓고 내기를 하곤 했다. 아이크의 퍼트가 2m 정도 지나갔는데 상대가 오케이를 줬다. 그러자 한 캐디가 “나는 어떡하라고요, 끝까지 쳐야 해요”라고 소리쳤다.

아이크는 8년 대통령 재임 기간 중 54차례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장을 찾았다. 경호 문제 때문에 53년 골프장에 철망이 세워졌다. 아이크가 오거스타에 있을 때는 캐디백에 기관총을 넣어 둔 경호원들이 코스에 어슬렁거렸다. 아이크는 백악관은 물론 대통령 휴양지인 캠프 데이비드에도 그린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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