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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구나 힘들구나 … 모두가 약자인 척하는 사회 … ‘구나’로 문제가 다 해결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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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일러스트=강일구]

부아까지는 아니지만 가끔 반발심이 생길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베스트셀러로 각광받으면 ‘아니, 언제 청춘이 아프지 않은 적 있었나’라고 어기대고 싶어지는 것이다. 젊은이들이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다는 ‘3포 세대’라는 말도 그렇다. 나의 부모 세대는 물론 내 세대도 연애·결혼·출산할 여건이 충분하지는 않았다. 객관적으로 보면 지금보다 열악했다. 그래도 눈에 씐 콩깍지가 시키는 대로 연애하고 숟가락 두 개, 젓가락 두 짝 갖고 결혼하고 애 생기면 낳고 그랬다. 그런데 유독 지금 젊은이들만 3포 세대라고?

 이쯤 되면 주변에서 고리타분하다, 너도 이제 늙었다, 시대가 다르지 않으냐, 아픔은 상대적인 거다 등 지청구가 쏟아질 차례다. 하지만 어깃장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저들만 아프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려운데 정치적으로 툭 하면 조롱까지 당한다. 투표 날 늙은 부모님 온천 보내 드린 게 ‘개념’ 있다고 칭찬받더니만 이번 총선 끝나고선 “아버님 댁 보일러 빼드려야겠어요”라는 패러디 유머가 인터넷에 나돌았다. 아픔도 피해도 약자인 자기들 것이고, 정치적 올바름마저 그들 독차지다. 많은 중·노년이 의아함을 넘어 반발을 느끼는 까닭이다.

 요즘 일부 엄마들 사이에 ‘구나병(病)’이 돈다고 한다. 미국 존 가트맨 교수의 ‘감성코치(Emotion Coach)’ 교육법의 영향이란다. 부모가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해준 아이가 사회적 적응력이 우수하고 성적·건강도 좋다는 것인데, 문제는 아무 행동에나 무조건 공감하려는 부모의 태도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친구를 때린 아이에게 “네가 기분이 나빴구나”, 유치원에 안 가려는 아이에게 “네가 피곤한가 보구나”라는 식으로 ‘~구나’를 남발하는 일이다. 혹시 또 다른 형태의 구나병이 은연중 우리 사회에 퍼져 있는 것은 아닐까. 너도 나도 희생자요 약자인 양하는 사이에 책임의식이나 스스로 일어서려는 의지는 한낱 퇴물 취급을 받고 있지는 않은가 말이다. 학교폭력만 해도 다들 내 아이 피해당할까 봐 걱정이지 가해자일 가능성은 제쳐놓는다. 정치권도 소통한답시고 ‘~구나’를 남발하며 여기저기 비위 맞추기에 급급한 것은 아닌가.

 하긴 우리나라만 그런 것도 아닌 것 같다. 프랑스 작가 파스칼 브뤼크네는 현대인의 약자연(然)하는 풍조를 유아증(infantilism), 유아적 자기연민이라고 통렬히 꼬집는다. 일종의 자기기만이 만연한 결과 약함이나 힘없음은 ‘책임이 따르지 않는 미덕’이 돼버렸다고 그는 개탄한다. 어차피 시간은 젊은 세대 편이고 그들이 장차 우리 사회를 지고 가야 한다. 대신 살아주기라도 할 것처럼 호들갑스럽게 위로하는 것은 사기에 가깝다. 젊은이들도 아마 30년 후에는 이런 말을 늘어놓게 될 테지만.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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