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죽여 묻은 10대들, 시작은 사소한 연애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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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신이 암매장됐던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행신동 근린공원. 시신이 묻혔던 곳은 산책로에서 7m쯤 떨어진 곳으로 20㎝가량 파여 있었다. 주변에는 시신을 덮을 때 사용한 낙엽이 쌓여 있다. [전익진 기자]

고교생이 포함된 10대 남녀 9명이 또래 여자 친구를 때려 숨지게 한 뒤 암매장했다 경찰에 붙잡혔다. 사소한 연애담이 원인이었다.

 경기도 일산경찰서는 18일 자신들을 험담하고 다닌다는 이유로 A양(18·무직)을 집단폭행해 숨지게 한 뒤 야산에 암매장한 구모(17)군 남매와 이모(18)양 등 10대 5명에 대해 폭행치사 및 시체유기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모(18·무직)군 등 4명은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5일 오후 3시쯤 고양시 덕양구 행신동에 있는 이양의 자취방에서 A양을 야구방망이 등으로 집단폭행했다. 이들은 가출한 A양과 어울려 지내던 동네 선후배 사이였다. 고양시 인근 파주시에 집이 있는 A양은 고교 2년 때 자퇴한 뒤 이들과 어울려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양의 자취방은 이들의 ‘아지트’였다. ‘○○랑 ○○랑 사귄다’ ‘○○가 ○○를 좋아한다’는 식의 연애담으로 시작한 대화가 시비가 됐다. 무차별 폭행이 다음 날 새벽까지 이어졌다. 오전 2시쯤 자다 일어난 폭행 가담자 중 한 사람이 A양이 숨진 사실을 알았다. 이들은 하루 동안 시신을 방치했다 7일 오전 2시쯤 300여m 떨어진 근린공원에 매장했다. 시신은 청테이프로 묶은 뒤 3단 서랍장의 서랍을 빼고 넣은 뒤 야산으로 옮겼다. 이어 프라이팬과 망치를 이용해 땅을 20㎝ 정도 파낸 뒤 시신을 묻고 낙엽으로 덮었다.

 암매장 장소는 야산 형태의 도심 공원 내이지만 시신을 유기한 시간이 새벽 시간대여서 목격자는 없었다.

 18일 오후 취재진이 찾은 시신 암매장 장소는 중·고등학교와 아파트 단지로 둘러싸인 왕복 4차로 도로변의 도심 공원이었다. 산책로와 7m 거리에 불과했다. ‘출입금지’라고 쓰인 노란색 폴리스 라인이 쳐진 나무 사이에 시신을 묻었던 지점이 움푹 파여 있었다. 범인들이 파놓은 얕은 구덩이 주변에는 시신을 덮을 때 사용한 낙엽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산책 나온 시민 김모(42·주부)씨는 “수많은 주민이 운동을 다니는 도심지 공원 산책로 바로 옆에 시신을 묻는 흉포함에 몸서리가 쳐진다”고 말했다.

 이들 중에는 고양시에 있는 한 실업계 고교생 3명이 포함돼 있어 충격을 주고 있다. 이 중 2명에게 영장이 신청됐다. 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일반 고교와 달리 2년제 실업고로 나이에 상관없이 입학할 수 있다. 교육과학기술부에 평생교육시설로 등록돼 있다. 나머지 6명은 고등학교를 중퇴했거나 졸업했다. 9명 중 7명이 절도나 폭행 등의 전과가 있다.

 경찰은 지난 17일 오후 5시 양심에 가책을 느낀 가해자 2명이 자수하자 수사에 착수했다. 이들과 같은 다가구주택에 사는 한 주민은 “새벽 1시에도 집 앞에서 4∼5명씩 무리 지어 휴대전화로 음악을 시끄럽게 틀어놓고 춤을 추며 담배를 피우는 일이 잦았다”고 말했다.

 일산경찰서 백승언 형사과장은 “범행이 집단적으로 이뤄졌고 시신을 새벽에 암매장하는 등 치밀성까지 보인 데다 전과자가 많아 또 다른 범행이 있는지 집중 추궁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학교 측은 “평소 문제 학생들을 관리하고 있지만 이번 사건과 관련된 학생이 누군지 확인되지 않아 경찰 조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고양=전익진·정영진·노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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