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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cm 퍼트 실수, 비싼 보약 먹은 셈이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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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홀까지는 고작 20㎝. 그러나 김인경(24·하나금융·사진)은 이 짧은 퍼트를 놓친 뒤 눈물을 흘렸다. 지난 2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끝난 LPGA투어 크래프트 나비스코 챔피언십 최종일 마지막 홀에서 벌어진 사건(?)이었다. 그로부터 2주가 흘렀다. 김인경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LPGA롯데 챔피언십(미국 하와이 코올리나 골프장) 개막을 이틀 앞둔 17일 김인경을 하와이 현지에서 만나봤다.

 “제가 그동안 잘 살았나 봐요. 얼마나 많은 전화를 받았는지 일일이 셀 수가 없어요. 대부분 위로와 격려 전화였지요. 힘내라고….”

 침울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김인경은 밝고 명랑했다. 누가 전화를 했는지 말해달라고 했더니 이름이 줄줄 쏟아진다.

 “주디 랜킨, 멕 맬런, 렉시 톰슨, 아 그리고 LPGA 커미셔너 마이크 완…. 정말 많아요. PGA투어의 벤 크레인, 찰리 위(한국이름 위창수)의 전화도 받았어요.”

나비스코 챔피언십 최종일 18번 홀에서 김인경의 퍼트가 홀컵을 돌아 나오고 있다. [중앙포토]

 랜킨은 명예의전당 회원인 LPGA의 원로, 맬런은 베테랑 선수다. 톰슨은 올해 17세의 유망주. 친구치고는 연령대가 다양하다. 김인경은 “미국에 와서 성별·나이와 상관없이 좋은 분들과 친구가 됐다. 줄리 잉크스터, 카리 웹 등도 절친한 친구”라고 말했다.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격이 될까 우려했지만 그날 사건에 대해 다시 물어봤다.

 “모두들 쇼크를 받았나 봐요. 잭 니클라우스와 마스터스에서 우승한 버바 왓슨도 그날 이야기를 했다지요. 그만큼 공감하고 동정심 같은 걸 느꼈다고 할까요.”

 LPGA투어에서 6년째를 맞는 김인경은 영어와 우리말을 번갈아 쓰면서 이야기했다. 미국 진출 초기 영어 대사가 나오는 미국 드라마와 영화만 골라서 봤다는 그다.

 “제가 나이 80이 돼서 ‘아, 그때 그 퍼트 참 아까웠어’ 하고 후회할 정도의 사건은 아니잖아요. 물론 아쉽지만 전 그래도 잘했다고 생각해요.”

 김인경은 그날 퍼트 실수로 연장전에 끌려나가 우승을 놓친 뒤에도 TV인터뷰를 마다하지 않았다. 미국의 골프채널, NBC 등 4개 방송사와 인터뷰를 했다. 골프채널의 진행자 켈리 틸그먼은 “그런 사건 이후에도 인터뷰에 응한 김인경은 정말 대단한 선수”라고 치켜세웠다.

 김인경은 그날 사건 이후 샷을 점검하면서 2주간 휴식을 취했다. 그렇다고 퍼팅 훈련을 더 열심히 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아버지가 비싼 보약을 먹었다고 생각하고 잊어버리라고 하시더군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인터뷰 도중 일본의 골프스타 미야자토 아이가 곁을 지나다 위로의 말을 건네면서 김인경을 껴안았다. 김인경은 그런 미야자토의 등을 토닥거리며 “괜찮다”고 밝게 웃었다. 김인경은 19일 개막하는 LPGA롯데 챔피언십에 출전해 다시 우승에 도전한다. J골프가 1라운드는 오전 7시30분, 2~4라운드는 오전 7시부터 생중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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