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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권석천의 시시각각

‘B급 젊음’이 여수 밤바다에서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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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권석천
논설위원

지난해 이맘때였다. 내가 오스트리아 빈에서 그를 만난 건. 사촌동생과 여행을 하다가 식당에서 그와 합석하게 됐다. 그는 자신의 이름이 ‘권석천’이고 출장 중이라고 했지만 직업은 말하지 않았다. 40대로 보이는 그는 자기 얘기 대신 질문을 해댔다. 방학 때도 아닌데 왜 이렇게 한국 젊은이들이 많죠? 그의 궁금증은 나를 향했다.

 - 빈에는 무슨 일로….

 “2년 동안 모은 돈으로 여행을 하고 있어요. 독일에서 한 달 지낼 예정인데, 잠시 들른 거예요.”

 - 그럼 회사는.

 “대학 졸업 후 중소업체에 다녔는데요. 적은 월급에 자기 일까지 떠넘기는 상사들과 좁은 사무실에서 부대끼는 생활이 싫었어요. 그래서 커피전문점 같은 데서 일했죠.”

 -외국에 나오니 좋아요?

 “2년 전 스페인에서 한 달 지냈거든요. 여유 있게 차도 마시고, 책도 보고, 그러고 있으면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러면 그렇지. 그는 아저씨다운 질문을 던졌다. “곧 서른이 될 텐데 앞으로 어떻게 살 거냐”고. 나는 “지금처럼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고 답했다. 그가 고개를 갸웃거릴 때 난 머리카락을 쓸어올렸다. 40대 정규직의 뻔한 세계관으로 이렇게 유랑하고 싶은 마음을 알기나 할까.

 4·11 총선 결과를 보고 빈에서 만났던 그 아저씨가 떠올랐다. 거대한 태풍이 될 거라고 했던 20대 투표율이 방송3사 출구조사 결과 45%로 나왔다. 서울은 60%를 넘었다고 한다. 하지만 전체 투표율 54%에는 못 미친다고 하니 40대나 50대는 “20대가 뭐, 그렇지” 하고 말할 것이다. 사실 나도 투표장에 가지 않았다. 우리 지역은 한나라당, 아니 새누리당 텃밭이다. 누가 출마하든 그쪽 후보가 뽑히게 돼 있다. 그런 이유도 있었지만 우선 몸이 피곤했다. 가게에 출근하기 전 몇 분이라도 더 자두는 게 낫다.

 총선 다음 날, 일을 하지 않고 구직활동도 포기한 청년 백수(니트족)가 100만 명을 넘었다는 뉴스가 나왔다. 많은 젊은이가 두께 1m의 유리천장을 현실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

 그렇다. TV 드라마(드림하이2)에 등장한 노래 제목이 우리 상황을 말해주는 건지 모른다. ‘B급 인생’. 비(B)급의 ‘비’가 내게는 비정규직의 비(非)다. 엄마의 정보력과 할아버지의 경제력이 대학과 직업을 결정짓는다는 사회. 웬만한 노력으론 B급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는 걸 깨달은 한 무리의 젊은이들은 저항하지 않는다. 화내는 법도 잊은 채 짜증만 낼 뿐이다.

 친구 녀석은 “전국의 청년 비정규직, 백수가 모여 촛불집회라도 하면 뭔가 달라지지 않겠느냐”고 한다. 그 친구도, 나도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안다. 따지고 보면 A급의 잘나가는 친구들은 세상을 바꿀 이유가 없다. 한 달의 생활을 꾸리기에도 벅찬 우리는 딴마음을 먹을 겨를이 없다. A와 B 사이에 있는 이들만 분노의 에너지를 트윗으로 발산하고 있다. 차라리 인터넷이나 트위터가 없었다면 분노가 한꺼번에 폭발할 수도 있을 텐데…. 종교가 19세기 인민의 아편이었다면 21세기엔 인터넷이, 스마트폰이 젊음의 아편인 거다.

 나는 부모님을 믿지만 기성세대는 믿지 않는다. 그들은 젊은 ‘앵그리 버드’들을 두려워만 하고 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여당도, 청춘의 상실감을 이용하려는 야당도 정답이 아니다. 언제 국회의원들이 젊은이들에게 ‘괜찮은 일자리’를 늘려주기 위해 끝장토론을 벌인 적이 있었던가. 기업들은 한 뼘의 자존심을 높여주기보다 어떻게 하면 한 푼이라도 덜 줄지를 고민한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청년들이여, 눈높이를 낮추라”고 했다지.

 12월 대선까지는 지켜볼 참이다. 누가 우리 편인지, 누가 진정으로 우릴 위해 땀을 흘릴지. 그때까지 나는 조용히 ‘여수 밤바다’의 선율에 몸을 맡기고 있을 것이다. 고단한 하루를 위무해 주는 그 가락에.

 “네게 들려주고파 전활 걸어 뭐하고 있냐고/ 나는 지금 여수 밤바다 여수 밤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