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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빈 롯데그룹 부회장 단독 인터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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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그룹 신격호(辛格浩·78)회장의 둘째 아들이자 한국롯데의 후계자로 지목되는 신동빈(辛東彬·45)부회장을 본지 양재찬 산업부장이 5일 롯데호텔에서 만났다.

辛부회장은 후계 이야기가 나오면 펄쩍 뛰면서도 롯데그룹의 장래에 관한 구상을 자세히 피력하는 등 세시간 가까이 본지와 단독으로 가진 인터뷰에서 자신감을 보였다.

그는 1990년 호남석유화학㈜ 상무이사로 국내에 들어온 이래 10년 넘게 辛회장에게 경영수업을 엄격히 받은 탓인지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는’ 롯데 특유의 보수적 경영관을 견지했다.

“잘 모르는 산업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회장님께서 평소 내실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셨는데,나도 그렇게 생각한다”며 辛회장의 가르침을 수시로 언급했다.

辛부회장은 인터넷에 심취해 쇼핑몰 등 인터넷 사업에 비중을 두고 있으며,백화점·편의점·할인점의 수백개 점포를 기반으로 유통과 금융을 한 시스템으로 결합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辛회장처럼 일본에 거주하면서 한국을 오가는 그는 “자녀 교육문제를 해결하는 대로 한국으로 이사할 생각”이라며 “서울 평창동에 정착하고 싶다”고 밝혔다.

-최근 경제 흐름을 어떻게 보는지.롯데는 직접 소비자와 접촉하는 업종이 많은데.
“소비가 너무 급격히 위축하는 것 같다.소비자들이 불요불급한 상품은 사지 않는다.숙녀 정장은 8월 이후 매출이 10% 이상 줄었다.경기 급락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구조조정을 빨리 해야 한다.”

-경기가 쉽사리 좋아지지 않을 것 같은데, 그룹 차원에서 경영전략은 어떻게 세우고 있나.
“최근 달라지는 게 많다. 환율은 달러당 1천1백원 정도로 생각했는데 1천2백원을 넘었다.우리는 식품 등 내수산업이 많아 영향을 덜 받지만 일부 경영전략을 조정하고 있다.”

-롯데는 백화점·할인점·호텔·외식업체 등 서비스 업종이 많은데,자금력이나 재계 위상으로 볼 때 이제 중화학공업 등 비중있는 산업에 진출할 때 아닌가.
“회장님(신격호 회장)이나 저나 잘 모르는 산업에 들어가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우리와 뭔가 시너지(통합 효과)가 있고, 우리가 하고 있는 사업과 가깝다면 몰라도 중공업처럼 잘 모르는 산업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여유자금이 많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기업 인수·합병(M&A)얘기가 나올 때마다 롯데가 인수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철강·홈쇼핑·제과회사 인수에 관심이 있다고 들었는데.
“우리 의지와 달리 국내 많은 기업들이 M&A 제안서를 보내온 게 사실이다. 홈쇼핑은 롯데닷컴 등 기존 인터넷 사업과 연계하면 효과가 크기 때문에 인수 제의가 정식으로 들어오면 적극 검토해보겠다. 다만 개인적으로 홈쇼핑업은 장기적으로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는 인터넷으로 가야 할 것이다. 홈쇼핑이 어느 정도 성장할 수 있을지 따져봐야 한다. 제과회사 인수는 독과점 문제 때문에 곤란하다.롯데제과의 시장점유율이 30%를 넘는데 더 인수할 수 있겠느냐.철강 회사는 인수를 생각해보지 않았다.”

-최근 인터넷 비즈니스가 고전하고 있다.그룹내 닷컴 기업의 대표이사로서 닷컴기업의 앞날을 어떻게 보는지.
“벤처 업계에서 문제가 터졌지만 인터넷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편의점(세븐일레븐)·할인점(마그넷)·외식(롯데리아)점포망을 갖고 있으며,이게 큰 강점이다. 인터넷을 통해 CD나 책을 구입하면 롯데리아·세븐일레븐 점포를 통해 배달할 수 있다. CD는 중고교생이 주 고객인데,학생들은 신용카드가 없다. 우리가 결제 시스템까지 갖추면 가능성이 있다. 내년 초 전자상거래 업체인 롯데닷컴과 연계해 고객이 주문한 제품을 가까운 세븐일레븐 매장에서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를 구상하고 있다.”

-그렇게 하면 시너지 효과가 클 것 같다.
“세븐일레븐 점포 6백40곳 중 이미 1백90곳에 현금자동입출금기(ATM)를 설치했다.연말까지 3백개로 늘릴 계획이다. 내년에 더 늘리고 롯데리아에도 설치할 계획이다. 그러면 우리가 은행보다 많은 ATM을 갖게 된다. 편의점에 가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나가겠다.”

-하지만 지금 맡고 있는 인터넷 사업이 아직 수익을 내지 못하는 것 아닌가.특별히 구상하는 수익모델이 있나.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조화가 중요하다.오프라인에 바탕을 둔 온라인이 이익을 낼 수 있다.인터넷은 앞으로 무선 쪽으로 이동할 것이다.i모드와 같은 무선 인터넷이 성장한다.우리도 무선 콘텐츠 분야에 관심을 두고 모비도비라는 무선 인터넷 콘텐츠 회사를 세웠다.롯데닷컴은 인터넷 쪽으로,모비도비는 무선 쪽으로 나갈 것이다.그렇다고 다른 그룹처럼 서두르지 않겠다.조금씩 해나갈 것이다.”

-북쪽 이산가족이 롯데호텔에서 묵는 등 ‘롯데’브랜드가 북한 주민에게 자연스럽게 알려졌다.이 참에 대북사업에 참여할 계획은.
“몇년 전부터 전담팀을 만들어 검토하고 있다. 비스킷 공장을 세워 과자를 만들까 생각했고 호텔사업도 가능성이 있다. 롯데제과는 상장회사여서 리스크도 따져야 하므로 시간이 필요하다.원료 조달은 원활할지,얼마나 팔 수 있을지가 문제다.”

-롯데가 언제까지 식품·유통·호텔업만 할 수는 없을텐데,새로운 사업 구상은.
“금융업 진출을 검토하고 있다. 롯데할부금융의 자본금을 늘려 롯데캐피탈로 바꿨다. ATM 설치도 금융업 진출을 염두에 둔 것이다. 유통업과 금융업의 결합은 시너지가 클 것이다. 우리가 설치하는 ATM은 여러 기능을 가지고 있다. 우리 점포망을 활용해 새로운 개념의 금융회사를 만들 생각이다. 신용카드 대금을 결제하고 전력요금·전화요금 등 공공요금을 자동이체할 수 있는 결제전문 금융기관을 구상하고 있다.백화점·편의점 고객에게 질 좋은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려는 개념이다. 정부 규제도 점차 풀릴 것으로 기대한다. 단기적으로 소비 위축이 걱정이지만 외식업도 전망이 밝다고 본다.내년에 한 종류의 메뉴만 취급하는 전문 패밀리 레스토랑을 열 생각이다.”

-신용카드 회사를 인수할 것으로 알려졌는데.
“한때 검토했으나 그만두기로 했다. 롯데백화점 카드회원이 4백만명을 넘는다. 이를 데이터 베이스로 활용해 육성하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다.”

-롯데호텔이 두달 이상 파업했었는데.
“노사 협상이 잘 마무리됐고 갈등도 풀고 있다.”

-유보금도 많고 다른 기업들이 어려울 때 사세를 키울 수 있는 기회가 아닌가.
“그룹 매출이 올해 13조원을 기록하고 내년엔 15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한다. 그 정도면 충분한 성장이라고 본다.회사 경영에서 가장 경계할 것은 무리한 확장이다. 부도가 나면 모두가 어려워진다.”

辛부회장은 인터뷰 말미에 후계 구도에 대해 辛회장의 언급이 있었는지 묻자 웃으며 “아는 게 없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 것을 논할 때가 아니다. 지금은 맡은 일을 열심히 할 따름”이라고 했다.

만난사람=양재찬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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