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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신의 돈방울'은 없었다…엎질러진 와인펀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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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2007년 4월 투자자의 무릎을 치게 하는 톡톡 튀는 아이디어의 사모펀드가 등장했다. ‘로미오와 줄리엣’ ‘십계’ 같은 대형 뮤지컬에 투자하고, 여기서 나온 공연 수익금을 투자자에게 분배하는 ‘뮤지컬 펀드’였다. 당시 뮤지컬 인기와 맞물려 큰 관심을 모았지만 이 펀드는 결국 수익률 ‘흥행’에는 참패했다. 그해 말 공연장소로 잡힌 예술의전당의 화재로 공연이 무산되면서 손실이 나더니, 2009년에는 자산을 굴리는 M운용사에서 200여억원의 횡령 사건까지 발생했다. 결국 투자자는 M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뮤지컬·납골당·한우·장뇌삼·드라마·기숙사·항공기…. 하나로 묶일 것 같지 않은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펀드의 투자 대상이라는 점이다. 주식형 펀드에 돈 넣기도 빠듯한 일반 투자자에게는 ‘먼 나라 얘기’처럼 들리지만, 투자 위험을 분산시켜야 하는 거액 자산가·기관투자가에게는 대안투자 수단으로 여전히 관심을 끌고 있다. 최근 5년 새 15조원 가까이 몰렸지만 이색펀드는 이름만큼이나 파란만장한 삶을 살고 있다. 사회 분위기에 편승해 많은 돈을 끌어모았지만 급조된 탓에 ‘쪽박’을 찬 펀드가 있는 반면, 기숙사 같은 의외의 투자처에서 안정적인 수익을 올리는 펀드도 있다.

 이색 펀드는 세계 증시 호황기인 2000년대 중반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국내 증시에 ‘펀드 광풍’이 불어닥친 시기다. 금융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지만, 색다른 실물을 투자 대상으로 삼았다는 아이디어가 투자자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5~6년이 지난 현재 저조한 수익률을 기록하면서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펀드가 적지 않다.

 16일 금융투자업계와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2007년 만화 ‘신의 물방울’의 인기에 힘입어 등장했던 ‘와인펀드’는 명맥을 겨우 유지하고 있는 수준이다. 당시 한국 등 아시아에선 대대적인 와인 열풍이 불었다. 1년 새 로마네 콩티, 페트루스 같은 유명 프랑스 와인에 투자하는 펀드가 줄줄이 등장했고, 순식간에 투자금이 몰렸다. 하지만 금융위기 이후 와인 가격이 떨어지면서 자금이 이탈하기 시작하더니, 현재 제대로 유지되고 있는 와인펀드는 3개에 불과하다. 지난해 11월 청산된 ‘도이치DWS와인그로스(Wine Growth)’는 2008년 설정 이후 수익률이 4.74%로 가까스로 마이너스를 모면했다. 당시 ‘쌍벽’을 이뤘던 펀드가 물 관련 산업에 투자하는 ‘물 펀드’다. 세계적인 물 부족 우려가 부각되며 큰 기대를 모았지만, 아직까지 ‘못난이 펀드’라는 오명을 씻지 못하고 있다. 최근 수익률이 살아나고 있지만 대부분의 물 펀드가 설정 이후 수익률이 마이너스다.

 이 밖에 한우 송아지를 구입해 농가에 위탁 사육시킨 뒤 수익금을 나눠 갖는 ‘한우펀드’, 이월 의류상품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의류 유통업체에 투자하는 ‘아울렛펀드’, 중국에서 한류 드라마 열풍이 불 당시 등장한 ‘드라마펀드’ 등 초기 기대를 모았던 이색 펀드도 대부분 저조한 수익률로 설정금액 50억원 미만의 자투리펀드로 전락했다.

 투자자의 소송이 이어지면서 홍역을 앓고 있는 펀드도 많다. 공무원연금공단은 2006년 100억원을 투자한 ‘마이애셋항공기’ 펀드가 거액의 손실을 내자 최근 운용사를 상대로 원금손실에 대한 책임을 묻는 소송을 제기했다. 납골공원인 ‘새하늘공원’ 분양사업에 투자하는 ‘플러스사모웰라이프특별자산4’도 사업 초기부터 분양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현재 소송이 진행 중이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당시에는 성공 가능성에 대한 세심한 검토 없이 유행에 편승해 급조되는 이색 펀드가 많았다”며 “펀드 성격이나 투자 대상에 대한 이해 없이 ‘묻지 마 투자’에 나선 투자자들의 손해가 적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잘나가는 펀드는 있다. 대표적인 게 ‘기숙사펀드’다. 기숙사펀드는 기숙사 건물을 설립하는 데 투자하고, 15∼20년 동안 운영권을 갖고 수익을 내는 구조다. 대학가 전세난으로 기숙사 입주 희망자가 넘쳐나면서 ‘산은건대사랑특별자산’ ‘동양강남대기숙사특별자산’ 등은 매년 꾸준히 7~8%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유가가 급등하면서 실물 유전에 투자하는 ‘유전펀드’도 수익률이 고공 행진이다. 2006년 12월 나온 유전펀드인 ‘한국베트남15-1유전해외자원’은 매년 14% 정도의 수익을 배당금 형태로 돌려줬다. 이 밖에 개별 펀드별로 수익률은 조금씩 다르지만 ▶대형 선박 건조 등에 투자하는 ‘선박펀드’ ▶미술품에 투자하는 ‘고상한’ 펀드로 화제를 모았던 ‘아트펀드’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에 투자하는 ‘럭셔리펀드’ 등도 괜찮은 수익률을 거두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이런 이색펀드는 대부분 ‘특별자산 사모펀드’로 분류된다. 장뇌삼·한우 같은 농축산물은 물론 영화·도로·태양광·유전 등 다양한 실물 자산에 투자하는 펀드를 총망라한다. 이색펀드는 계속 투자가 늘고 있다. 2006년 3조원이 채 안 되던 특별자산 사모펀드는 올해 3월에는 17조1636억원까지 급증했다. 일반 주식형 펀드에서 계속 자금이 빠져나가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한편 다양한 실물자산 펀드가 일반적인 미국에는 주식형 펀드 쪽에 이색 펀드가 많은 편이다. 미국의 시사 주간지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에 따르면 대(對)쿠바 경제 봉쇄가 해제되면 막대한 이익을 낼 수 있는 기업에 투자하는 ‘허츠펠드 카리브해 연안 펀드’, 경제에 대한 정치적 부작용을 우려해 의회 회기 중에는 투자를 하지 않는 ‘의회 영향력(Congressional Effect) 펀드’, 담배·술·방위사업 같은 비윤리적(?)인 기업에 투자하는 ‘부도덕(Vice) 펀드’ 등 다양한 뮤추얼 펀드가 운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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