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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자금 제대로 썼나] 2. 이렇게 새나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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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급 4백%.이중 1백%는 5월 중 지급,나머지는 4분기 중 지급.학자금 명목으로 기본급 50% 추가 지원’.지난 4월 동아건설 고병우 회장과 노조가 체결한 노사협약의 골자다.동아건설의 1999년도 경상적자는 2천6백7억원.

채권은행을 통해 공적자금을 타 쓰는 워크아웃 기업들은 대개 약속이나 한 듯 올해 임금을 올렸다.

워크아웃이 실패하면 채권단이 쏟아부은 공적자금은 대개 그냥 날아간다.1998년 6월 워크아웃 개시 이후 도중 하차,법정관리로 전락한 대우차·동아건설·우방 등 5개 업체에 들어간 신규 자금만 2조1백66억원에 달한다.

◇구조조정 부진한 만큼 공적자금 샜다=“대우차는 국내는 물론 인도·중국·루마니아·우즈베키스탄에 연간 1백50만대 생산규모의 1천5백cc엔진 공장이 있다.그런데 수요는 50만대 밖에 안된다.생산을 하면 할수록 재고가 쌓이고 손해를 보게 돼 있다.”

대우차의 한 전직 임원은 “워크아웃을 시행할 때는 이같은 기형적인 생산구조를 먼저 개선하고 자금을 투입했어야 하는데 정부와 채권단은 매각될 것으로 믿고 자금만 쏟아부었다”며 “그 결과 대우차에 신규자금을 지원한 것은 헛수고였다”고 결론지었다.

대우차의 경영 정상화를 위해 채권단은 지난해 8월 워크아웃에 들어간 이후 2조2천억원(무역어음 등 포함)의 자금을 신규 투입했지만 결과는 오히려 악화됐다.

산업은행 최익종 팀장은 “대우차는 자금 지원에 앞서 생산설비를 효율화하고 협력업체와 인력 구조조정을 단행했어야 했지만 전문지식과 노하우가 없는 채권단으로선 엄두가 나지 않았다”고 실토했다.

대우차가 워크아웃 시작 당시 약속한 재료비 절감목표는 올해 1천4백억원이지만 지난 9월까지 아낀 돈은 4백20여억원 밖에 안된다.한 임원은 “실제로 원가절감은 별로 이뤄지지 않았다”며 “이를테면 훨씬 싼 값으로 국내 생산이 가능한 엔진을 중국 공장에서 사오는 괴상한 계약 때문에 한해 2백억원 이상이 더 들어갔다”고 말했다.이 계약은 7월에야 중단됐다.

◇부도덕한 기업주도 한몫=우방그룹 이순목회장은 워크아웃 기간 중 1백82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의혹으로 검찰에 고발됐다.

채권단에 2백억원대의 부동산(서울 장충동 주택)포기각서를 썼다가 인감을 바꾸곤 소유권 이전을 거부한 최원석 전 동아건설 회장 처럼 사재출연약속을 안지킨 기업주도 많다.

◇금융계 도덕적 해이 백태=고객들의 예금인출사태에 앞서 대주주나 경영진과 관련된 돈들이 먼저 빠져나갔다.

1997년말 영업정지된 A종금사.예금보험공사는 실사과정에서 영업정지 하루전에 계열사 자금 20억원이 대주주에게 갔다가 복잡한 과정을 거쳐 제3자 명의의 채권으로 인출된 단서를 포착했다.

예보 관계자는 “퇴출 금융기관에서 의심가는 뭉칫돈 인출이 꽤 있었다”고 말했다.

횡령과 불법대출을 통한 돈 빼먹기도 다반사.지난 10월 예보의 6개 파산신협 조사에선 통장발급용 전산라인과 돈을 실제 관리하는 라인을 따로 설치해 통장만 주고 돈은 바로 빼돌리는 등 기상천외한 예금빼먹기 실태가 드러났다.이렇게 새나간 돈이 5백98억원이 됐다.

아예 현금을 갖고 튀는 금융사고도 빈발하고 있다.지난해부터 올해 9월까지 드러난 금융사고액만도 1천8백억원이나 된다.

◇여전히 좋은 은행 복지제도=예전에 은행원들의 복지제도는 다른 근로자들의 부러움을 샀다.국민들의 돈인 공적자금으로 연명하고 있는 지금도 은행의 복지제도는 여전히 좋다.

한푼이 아쉬운 은행이지만 직원들에게 연 1%만 받고 돈을 빌려주는 특혜 대출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직원들로선 7∼8% 이상의 금리차익을 보고 있는 셈.이런 특혜대출을 폐지한 곳은 오히려 우량은행으로 분류되는 한미은행 1곳 뿐이다.

재경부는 “노동조합과의 구체적인 합의를 못해 고치지 못했다”고 발뺌하고,은행권은 “사기진작 차원에서 없앨 수 없었다”(한빛은행 관계자)고 버티고 있다.

은행 임원 연봉도 올랐다.1차 공적자금이 투입된 98∼99년 한빛은행장의 연봉은 70%(9천만원→1억5천3백만원)뛰었고,산업은행이 17.8%,기업은행이 16.0% 올랐다.

올해엔 세법개정으로 기밀비를 합치고,은행 자산이 크면 연봉도 많이 받도록 해 연봉은 훨씬 더 많아졌다.그 결과 한빛은행장의 연봉은 올해 3억2천5백만원이다.

단순히 월급이 많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만큼의 경영실적을 보였느냐는 지적이다.한빛은행은 올 상반기에만 9백29억원의 적자를 냈다.

명예퇴직금 지급관행도 사라지지 않았다.공적자금을 받은 금융기관 21곳이 지난해와 올해 지급한 명예퇴직금은 1천5백여억원.

제일은행은 최대 30개월치 월급을 명퇴금으로 지급했고,공적자금을 두번째 지원받는 한빛·광주·제주은행도 9∼16개월치를 줬다.

◇집행기관들의 허점=공적자금 집행기구인 예금보험공사와 자산관리공사(캠코)에서도 허점은 발견된다.

두 기관은 98년 7∼9월 11조5천억원의 예금보험기금채권과 8조9천억원의 부실채권정리기금채권을 발행했다.

조건은 상한 15%,하한 10%.결국 이것이 족쇄가 돼 이후 금리가 7∼8%로 떨어졌어도 연 10%의 이자를 꼬박 물어야 했다.김민석(민주당)·이성헌(한나라당)의원은 “두 기관의 이자 책정 실수로 1조7천여억원의 손실이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캠코의 경영관리위원회가 정한 1급 본부장 수는 3명,연봉은 8천1백만원이다.그러나 캠코는 이사회 의결로 본부장을 6명으로 늘리고,연봉도 1억2천만원씩 주다가 감사원에 적발됐다.예보와 캠코의 비효율은 공적자금의 낭비로 연결된다.

직원들에게도 인심을 썼다.캠코는 지난해 12월 직원 1인당 1백만원씩 모두 14억여원의 특별성과급을 지급했다.

제복을 입든 안입든 임직원 모두에게 1인당 30만원씩 4억2천여만원을 피복비로 주고,결혼기념일을 위한 유급휴가까지 뒀다가 감사원 지적을 받은 최근에야 없앴다.

특별취재팀=심상복 차장(팀장), 정철근.정재홍.서경호(이상 경제부).이상렬.김현승.홍주연(이상 기획취재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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