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드럼통이 움직이면서 생기는 진동을 잡아주는 부문이죠. 주철로 되어 있는 거 보이시죠? 가격을 낮추기 위해 콘크리트를 쓰는 제품과는 확연히 다릅니다.”
지난달 27일, 서울 역삼동 밀레코리아 지하창고에선 세탁기 분해 작업이 한창이었다. 2900만원가량 하는 상업용 세탁기를 분해해 수리 기술자들에게 구조와 수리법을 가르치는 교육이었다. 이 교육을 위해 독일 본사에서 기술교육 부문장이 날아왔다. 안드레아 스톡(50) 부문장이다. 생활 가전 제품으로 100년 이상 기업을 영속시켜온 비결을 묻자 스톡 부문장은 주철 지지대 얘기를 꺼냈다.
“우리 목표는 싸게 만드는 게 아닙니다. 다르게 만들어서 제값을 받는 거죠. 덕분에 프리미엄 시장을 개척할 수 있었고, 후발 기업의 눈부신 성장에도 시장에서의 우위를 지킬 수 있었어요.”
기술교육 부문장이 세계 40여 개국을 다니며 수리 기술자들을 직접 교육하는 것도 남다른 제품을 위해서다. 글로벌 기업 대부분이 생산공장을 중국 등지로 이전하고 있지만 밀레는 여전히 독일 생산을 고집하고 있다. 품질 및 기술 관리를 위해서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거쳐 아들까지 엔지니어로 일하는 ‘50년 밀레 집안’이 있을 정도다. 그렇다 보니 독일을 제외한 국가의 기술자들은 제품 내부를 들여다볼 일이 많지 않다. 그래서 일년에 두 차례씩 기술교육을 한다. 한 번은 스톡 부문장이 각국 법인을 찾고, 한 번은 각국 기술자가 독일 본사를 찾는다.
‘20년을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이란 슬로건 역시 완벽을 추구하는 밀레의 기업 정신에서 나왔다. 일주일에 1시간 정도 쓰는 진공청소기의 경우 20년 동안 쓴다고 할 때 1000시간 사용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밀레 공장에선 각 생산라인 맨 끝에 있는 두 개의 제품을 골라 1000시간을 쉬지 않고 작동시킨다. 이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면 해당 라인 제품 전체를 폐기한다. 세탁기는 1만 시간의 작동 테스트를 거친 후에야 공장을 나갈 수 있다. ‘20년 사용 제품’이란 고객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부품 역시 20년간 생산한다. 스톡 부문장은 “이게 바로 장인정신”이라고 말했다.
밀레는 무차입 경영으로 유명하다. 1910년 자동차 사업에 손을 댔다 2년 만에 접었던 것도 이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주문이 밀려 공장을 확장해야 했는데 그러려면 돈을 빌려야 했던 것이다. 스톡 부문장은 “무차입 경영이 있기 때문에 실적에 연연하지 않고 장기 투자와 기술교육이 이뤄질 수 있다”며 “단순히 빚이 싫어서가 아니라 장인정신을 지키기 위해서 무차입 경영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래서일까. 밀레의 제품은 타사 제품에 비해 2배 이상 비싸지만 국내에서 매년 10%가량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그는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삼성·LG전자의 텃밭이라는 점에서 한국 시장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성공하면 어떤 국가에서도 경쟁력이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국만을 위한 특별한 전략을 쓰는 건 아니다. 오히려 배송차량까지 밀레 로고가 붙은 직영만 고집할 정도로 독일색을 강조한다. “아시아 고객은 유럽 고객보다 더 유럽 스타일을 좋아합니다. 가장 독일적인 것, 가장 유럽적인 게 아시아에서 오히려 잘 먹히더군요.” 한국을 넘어 중국과 아시아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으려는 밀레의 전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