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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수퍼개미"중학생때 받은 포항제철 7주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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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훈 기자]

아들 한세희(36). 그는 수퍼개미다. 100억원대 자산을 굴리는 주식판 큰손이다. 그가 샀다는 소문이 나면 그 회사 주가가 뛴다. 5%가 넘는 지분을 보유한 회사도 여럿이다.

 아버지 한상진(67). 진보 성향 사회학자다. 1980년대 “서민적 가치관을 지닌 중산층(中民)이 사회 변혁을 이끈다”는 내용의 중민이론을 창안했다. 지금도 “자본주의의 한계를 극복할 주체는 중민”이라고 믿는다. 서울대 명예교수로 최근 ‘중민사회이론연구재단’을 열었다.

 달라도 많이 다른 부자(父子)가 뭉쳤다. 주식 기부 프로젝트다. 세희씨는 지난달 자신이 보유했던 쌍용머티리얼 주식 220여만 주 중 20만 주를 이 회사에 기부했다. “10만 주는 사내복지기금으로 쓰고 10만 주는 직원 개개인에게 증여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 회사 주가(13일 종가 2595원 기준)를 감안하면 5억1900만원 상당이다.

 아버지 한 교수가 여기에 참여한다. 직원에게 어떻게 주식을 나눠줄지, 주식 기부로 인한 효과는 어떤지 연구하기로 했다. 4년 동안 추적조사를 하고 이런 식의 실험을 할 주주들에게 결과를 알려준다는 것이다.

주식 

한상진 교수(左), 한세희씨(右)

주식을 가르친 건 할아버지다. 중학교 때인가, 포항제철의 국민 공모에 참여해 손주 명의로 7주를 사주었다. “이건 네 거다. 좋은 주식이다.”

 신문에서 주식 시세를 보는 버릇이 생겼다. 포항제철 얘기가 나오면 귀를 기울이게 됐다. 그리고 대학교(서울대 정치학과)에 입학하려던 무렵, 할아버지는 포항제철 주식 3주를 더 사주었다. “이제 네가 원할 땐 언제든 팔 수 있다.” 당시 장중 매매의 최소 단위인 10주를 갖추게 된 것이다.

 사고팔 수 있다…. 주식시장을 들여다보게 된 건 그때부터였다. 3학년이 되려던 1998년 초, 주식 매매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외환위기가 터진 직후. 주가는 바닥을 짐작할 수 없게 떨어졌다. 포스코 주식을 팔고 그동안 저축한 돈을 보태 400만원을 장만했다. 지금 그 돈은 100억원으로 불어났다.

 첫 투자는 실패였다. 철 지난 상장기업 분석 책자를 보고 ‘나산’에 150만원을 투자했다. 산 지 하루 만에 나산은 부도를 맞았다. “그게 오히려 자극이 됐던 것 같아요. 어떤 기준으로 회사를 평가하고 주식을 사야 할지를 고민하게 됐죠.”

 무섭게 주식시장을 파고들었다. PC통신의 주식 투자 모임을 꼬박꼬박 나갔다. 그 인연을 바탕으로 대학생 모의투자대회도 참가했다.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과 합숙생활을 했다. 반지하 월세방에서 먹고 자며 종일 주식 얘기를 했다.

 그러다 인터넷 금융사이트 구축 회사에 입사해 스승을 만났다. 단기매매(단타) 기법을 가르쳐 준 ‘주식 달인’ K씨. 그에게서 상한가 따라잡기(상따) 방식을 배웠다. 2002년 400만원은 30억원으로 불어나 있었다.

 장기 투자를 시작하게 된 건 입대 때문이었다. 군 대체복무로 병역특례 근무를 시작하면서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단기 매매를 할 수는 없잖아요. 빚의 많고 적음을 따져 절대 망하지 않을 회사를 골랐죠.” 그렇게 태광산업 주식을 샀다. 병역특례가 끝날 무렵엔 30억원이 90억원으로 불었다.

소비 

세희씨를 두 번 만났지만 모두 같은 차림이었다. 모자 달린 회색 티셔츠에 진회색 패딩 점퍼. 모두 중저가 브랜드다. “옷에 관심이 없어서… 그 사이에 한 번 빨았어요.” 왜 같은 옷을 입고 다니냐는 질문에 그는 웃으며 말했다.

 그는 집도 없고 차도 없다. 운전면허도 없다. “한국은 대중교통이 너무 잘 돼 있어 운전을 할 필요성을 못 느껴요. 평소엔 지하철을 타고 급하면 택시를 타요.”

 검약을 가르친 건 아버지다. 양복을 사면 안감이 해어질 때까지 입었다. “돈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으면 안 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아버지 영향인가 봐요. 아끼려는 게 아니라 애초 뭘 사고 싶은 생각이 안 들어요. 사고 싶은 게 없으니 돈을 더 벌어야겠다는 욕심도 없고요. 이미 생활하는 데는 큰 지장이 없으니까요.”

 2004년 결혼한 아내도 비슷한 성격이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국제보건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아내가 박사 과정에 입학하며 세희씨도 함께 미국으로 건너갔다. 가족은 대학원에서 제공하는 가족 기숙사에 산다. 그래도 남편이 주식시장 ‘큰손’인데 명품 가방 정도는 여럿 되지 않을까. “아내는 명품을 사지 않을 뿐만 아니라 명품을 싫어해요.”

 아내가 가끔 돈을 달라고 부탁할 때가 있다. 자신이 지지하는 시민단체에 기부하기 위해서다. 이외에도 세희씨는 아버지 고향인 전북 임실군의 노인 요양원에 10년째 후원금을 내고 있다. 또 아내가 졸업한 고등학교에 급식비를 지원하고, 전업 투자자 모임과 함께 소년가장들을 돕는다. “모두 얼마나 기부했는지는 모르겠어요. 세보지 않아서. 몇억원 정도 될 것 같은데….”

기부 

전기차 부품 생산업체인 쌍용머티리얼의 이영조 사장. 그는 주주 한세희씨를 이해하지 못한다. “처음엔 이상했죠. 주주는 위험부담을 안고 투자하는 거고, 주가가 오르면 그에 대한 보상을 받는 게 당연한데. 주가가 올랐다고 회사에 기부한다는 건 들어본 적도 없어요. 우리는 할 일을 한 것뿐인데 열심히 일해서 고맙다고 하고….”

 세희씨는 지난달 8일 쌍용머티리얼의 주식 90만 주를 팔면서 10만 주를 따로 뗐다. “사내 복지기금으로 써달라”며 이 사장에게 전달했다. 지난달 말엔 다시 10만 주를 기부했다. “직원들에게 나눠주라”면서.

 왜 그랬을까. 세희씨는 “정말 고마워서”라고 한다. 그는 2009년 말부터 이 회사 주식을 모두 225만 주 사들였다. 평균 매입 단가는 1135원. 지난달 초 이를 주당 2600여원에 매도했으니 2년여 만에 130%가 넘는 수익을 거둔 것이다.

 정말 그것뿐일까. 그의 속마음을 조금 더 들여다봤다. 그는 “사실 사회의 부가 점점 한 쪽으로만 몰리는 것 같았다”고 말한다.

 “회사가 잘되면 주주는 배당을 많이 받고 주가도 오르잖아요. 그런데 회사가 잘되게끔 힘쓴 직원들에게는 성과금 조금 말고는 돌아가는 게 거의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회사가 잘될수록 주주와 직원들 간 부의 격차가 더 벌어지게 돼요.”

 이 부의 격차를 줄여보고 싶었단다. 자본주의의 꽃인 주식시장에서 부를 일군 그가, 자본주의의 한계를 고쳐보고 싶다는 것이다.

 잠깐. 빈부의 격차를 줄이려면 가장 가난한 사람을 먼저 도와야 하는 게 아닐까.

 “물론 그렇게 하면 돈이 효과적으로 쓰이겠지요. 그런데 이 방식은 달라요. 인과관계를 분명히 드러낼 수 있으니까요. 회사가 잘 되면 주주가 직원들에게 감사의 표시로 보상을 하는 거죠. 직원들은 더 열심히 일할 거고, 회사는 더 잘되지 않을까요.”

 이런 생각을 아버지에게 상의했고, 한 교수는 반색했다. 한발 더 나가 “이건 연구할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쌍용 머티리얼에 “주식 배분 방식과 기부에 따른 효과를 연구하고 싶다”고 제안했고, 이 사장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이들은 태스크포스(TF)팀을 꾸려 주식을 어떻게 나눌지 논의하기로 했다. 한 교수는 “사실 어려운 문제”라고 말한다. “직원에게 똑같이 주식을 나눠줄지, 근속기간을 따질 것인지, 회사에 대한 공헌도를 따질 것인지…. 많은 갈등이 생길 수 있는 문제죠. 이번에 그 틀을 만들어 놓으면 앞으로 주식을 기부하고 싶은 주주들이 이를 활용할 수 있을 겁니다.”

 한 교수는 앞으로 4년간 이 회사를 추적 조사하려 한다. 주식을 받은 직원들이 어떻게 변했는지, 성과는 얼마나 좋아졌는지, 경영 여건은 어떻게 달라졌는지, 주식 기부가 회사에 미친 영향을 종합적으로 들여다볼 계획이다.

 이영조 사장은 벌써 연구 결과를 짐작하는 것 같다. “기부 얘기가 나온 뒤로 회사 분위기가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열심히 일했다고 주주가 주식을 준다’니까 직원들 사기가 엄청 올랐죠. 정말로 회사가 발전하면 내가 발전하는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일하는 것 같아요.”

 

아버지는 “아들이 100억원을 벌어도 크게 기쁘지 않다”고 한다. 한 교수는 세희씨가 전업투자자가 되는 것을 불안하게 지켜봤다. “사회적 기반 없이 투자만 한다는 게 위태로워 보였죠. 무엇보다 공부를 하길 원했어요. 나도 연구할 때 가장 행복하니까 그런 행복을 맛보게 하고 싶었지요.”

 아들의 자산이 눈덩이처럼 불어났지만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지금도 괜찮다 싶은 석사학위 프로그램을 보면 출력해서 아들에게 건넨다. “공부에도 재능이 있으니 돈만 벌지 않았으면 해요. 100억원을 벌었다고 ‘너 성공했다’고 한 적이 없어요. 항상 ‘아직 늦지 않았으니 공부하라’고 하지요.”

 하지만 아들에 대한 믿음이 변한 적은 없다. “돈 버는 데 혈안이 돼서 주식을 하는 게 아니란 건 알아요. 철저하다시피 검소하니까요.”

 그는 평생 중민을 연구해 왔다. 좋은 교육을 받고 넉넉히 살면서도 서민을 배려하는 계층. 자신이 얻은 것을 사회에 되갚으려고 노력하는 계층. 그는 아들이 자신이 그려온 중민과 비슷한 모습으로 자란 것이 자랑스러운 눈치였다.

 “내 세대는 기부를 할 여유가 없었어요.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생각을 실천에 옮길 마음의 여유가 없었지요. 기부는 삶의 방식이자 습관 같은 거예요. 내 자식 세대가 그걸 실천에 옮긴다는 게 너무 고마워요.”

 세희씨에게 기부는 단순한 ‘나눔’이 아니다. 장기 투자자로서 더 많은 이득을 얻기 위한 ‘윈윈 전략’이기도 하다. “제가 투자를 하는 동안은 회사가 계속 좋아져야 하잖아요. 주식을 직원들과 나눠서 회사가 좋아지면 제 나머지 주식들은 더 가치가 올라가겠죠.”

 공부를 하라는 아버지의 바람은 당분간 들어줄 수 없을 모양이다. “10년 동안 더 장기 투자에 매진하고 싶어요. 투자가 잘 되는 한 이득을 공유하는 실험도 계속할 생각이고요. 10년 뒤엔 기업을 인수해 보고 싶은데…. 아직 먼 뒷날 얘기라 잘 모르겠어요.”

주식 투자엔 성공 공식 없다는 한세희씨

시장 읽을 눈 없다면 ‘지옥의 길’ 들어서지 마세요

한세희씨는 책으로 주식을 배우지 않았다. 주식 관련 책이라곤 만화로 된 주식 입문서를 한 권 읽었을 뿐이다. 매수·매도·거래량 등의 기본 개념을 담은 책이었다.

 “주식 기법 책만 읽고는 성공하기 어렵다고 생각해요. 과거를 바탕으로 공식 같은 걸 뽑아낸 거지만, 그걸 현재에 적용할 수는 없거든요.” 주식 투자에 실패하는 이들의 상당수가 주식 투자에 성공 공식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그는 본다.

 성공 비결을 묻자 “먼저 운이 좋았다”고 말한다. 처음 주식을 시작한 1998년은 주가종합지수가 300대에 진입할 정도로 시장이 망가진 상황이었다. “투자하기 좋은 때였죠. 거의 모든 기업이 저평가됐던 때니까. 제가 고른 회사뿐 아니라 어느 회사를 골랐어도 (망하지만 않았다면) 많이 올랐을 거예요.”

 14년 동안 꾸준히 자금 규모를 불렸는데, 운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그는 “좋은 친구들을 만나 시장 읽는 법을 배웠다”고 털어놓았다. 지금도 가깝게 지내는 전업 투자자 모임. 대부분 대학생 모의투자대회에서 만난 친구들이다. 매일 만나 그날의 시장을 분석하고, 각자 투자 내용을 복기했다. “저 분석이 맞았구나, 저 분석은 틀렸구나, 되짚어가면서 많은 걸 배웠지요.”

 항상 벌기만 한 건 아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땐 꽤 손해를 봤다. 만회하려는 생각에 마음이 다급해졌다. 그때 초심이 떠올랐다. ‘차라리 정리하자’고 결심했다. “주식을 배울 때 첫 교훈이 ‘탐욕이 생기기 시작하면 큰 손해를 본다’는 거지요. 빨리 벌겠다, 만회하겠다 생각하면 마음이 흔들리더라고요. 정리할 건 하고 주식 매매를 쉬었어요. 덕분에 진짜 큰 급락장을 피했지요.”

 아내의 공부 때문에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그는 일과의 대부분을 두 아이를 돌보는 데 쓴다. 짬짬이 상장기업 분석 책자를 읽으며 기업을 공부한다. 괜찮다 싶은 회사를 발견하면 몇 주일간 파고들기 일쑤다. 사업보고서와 뉴스 등으로 업종 전망과 기업 비전을 분석한다. 그 기업의 기술 경쟁력을 파악하기 위해 이공계 논문을 구해 읽기도 한다. 화승인더스트리·알에스넷·하이트론 등 그가 5% 이상의 지분을 보유한 기업들 모두 이런 과정을 거쳤다.

 그는 전업 투자자를 꿈꾸는 이들에게 “무턱대고 투자하는 건 말리고 싶다”고 말한다. “우리끼리는 ‘지옥으로 가는 길’이라고도 하죠. 그만큼 힘든 데다 성공하는 경우보다 실패하는 경우가 더 많거든요.” 그는 “주당순자산비율(PBR)이나 주가수익비율(PER) 같은 지표, 주식차트 분석법 같은 기술로 접근해서는 매수 종목을 찾기가 어렵다”며 “시장을 읽을 수 있는 눈이 있다는 확신이 들지 않으면 전업 투자의 길에 들어서지 않아야 한다”고 권했다.

◆중민이론=한상진 명예교수가 서울대 사회학과에 재직하던 1980년대 중반 창안한 계층 이론. 중산층과 민중을 합쳐 만든 단어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정한 지위와 부를 쌓았으면서도 민중(서민)적 가치관과 권위주의에 대한 저항의식을 지닌 계층’이란 개념이다.

 한 교수는 중민이 요즘 거론되는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트위터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정치·경제 권력에 대한 견제를 활발히 펼치는 계층 역시 상당수가 중민이라는 것이다. 그는 “중민은 특정 이념을 바탕으로 한 개념이 아니다”라며 “그런 점에서 ‘강남 좌파’와 구별된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 지도층 인사의 높은 도덕적 의무)를 실천하는 계층이라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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