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김지하의 '사귐'과 제인 구달의 '관찰'

중앙일보

입력

지난 월요일 기자에게 항의성 e-메일 한 통이 날아들었습니다.
제인 구달의 신간 '희망의 이유' 일색이었던 지난 주 저희 신문과 동아.조선 등 3개 일간지 북 섹션(11월25일자)의 머리기사를 꼼꼼히 견줘본 독자 한 분이 신문사들이 서로 짜서 그런 지면을 제작했느냐는 뜻의 질책을 하신 겁니다.

그 힐난의 뜻을 기자가 이해 못하는 바 아닙니다. 출판계의 요즘 화제도 그렇고, 기자의 편집국 동료들도 최근 반복되는 '우연의 일치' 가 뭔 영문인가 싶어할 정도니 '북섹션의 주말 대회전(大會戰)' 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은 당연합니다.

여러 신간을 검토하다가 최선이라고 판단한 제인 구달을 '오늘의 일품요리' 로 올렸으나 공교롭게도 3개 신문이 '침팬지 판' 인 것을 확인해야 했던 기자로서도 느끼는 바 적지 않습니다. 우선은 어떤 자괴감(自愧感)입니다. 이를테면 한 중견 출판인의 지적이 귀에 쟁쟁합니다.

"한국 신문들 종사자들이 심지어 멘탈리티까지 정형화돼 있다는 증거 아니겠는가□ 우리는 다양한 각개약진을 보고싶다." 백번 옳은 말입니다.

기자도 바로 그런 다양성의 확보 만이, 올해 출판 환경의 가장 큰 변화일 수도 있는 북 섹션이 풍요로워지기 위한 조건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오늘만은 제인 구달의 경이로운 메시지를 다시 한번 음미하고 싶어 좀이 쑤실 지경입니다. 다시 지면을 꾸민대도 제인 구달을 머리기사로 올릴 심산인데, 어쨌든 이 시대의 핵심 과학자인 제인 구달이 스스로 '영적(靈的)인 자서전' 이라고 말한 텍스트를 인문학적으로 접근하려 합니다. 퍼뜩 생각나는 것이 영감에 꿈틀거리는 시인 김지하의 생명운동론입니다.

김지하는 미학이론서 '예감에 가득 찬 흰 그늘' (실천문학사, 1999)에서 다가올 시대 예술의 비전을 '우주사회적 공공성' 이란 말로 요약합니다.

"전 우주와 지구에 대한 창조적 비전을 예술을 통해서 제시하지 않으면 안된다. 사람, 동식물, 흙, 바람 등 우주 만물의 마음을 사귀고 접해서 감화시켜야 한다. 1천5백년 전 그것을 말한 것이 바로 고운(孤雲) 최치원의 '접화군생(接化群生)이다." (96쪽)

다소 거창하게 들리는 시인의 말은 간명합니다. 이 시대 모든 문제의 핵심에 있는 '자연과 대립된 인간' 이라는 근대적 인간관의 폐해를 넘어서자는 것, 바로 그것입니다. 제인 구달이야말로 그 '접화군생' 의 실제 사례라고 기자는 판단합니다. 그의 책은 침팬지를 포함한 '우주 만물과 사귀고 접하는' 감동에 찬 사실들로 가득합니다.
이를테면 1960년 그는 아프리카 곰비 공원에서 침팬지가 모여 사는 공동체를 발견합니다.

그 뒤 제인 구달은 캠프를 치고 관찰을 시작하는데, 서로가 무섭고 낯설어서 90m 거리에서 접근하는 데만도 무려 1년이 걸립니다.
제인 구달은 그 뒤 침팬지 한마리 한마리의 얼굴을 익히며 이름을 붙여주며, 자신이 차린 바나나 밥상에 침팬지들이 찾아오게 만드는 놀라운 이변-김지하 말로 '사귐' 이죠-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합니다.

이를테면 제인 구달이 숲 속을 거닐면, '데이비드' 라 이름 붙인 잘 생긴 침팬지 녀석은 그녀 주머니에 바나나가 있는지 슬슬 접근해옵니다. 얼마나 멋진 광경이자 넘나듦입니까? '인간 만이 도구를 사용하는 영장류' 라는 인류학의 가설이 깨지는 것도 바로 이때입니다.

어느 날 구달은 데이비드가 흰개미를 잡아먹기 위해 풀잎 하나를 도구 삼아 꺾어들어 개미굴에 집어넣고 다닥다닥 붙은 개미를 훑어먹는 광경을 발견합니다. ('제인 구달' 79쪽, 민음사, 1996) 이것은 근대적 인간관이 두 쪽 나는 역사적인 순간이라고 기자는 규정하려 합니다.

또 하나 유념해둘 것은 이런 성과란 책에 명기돼 있듯 구달이 '객관적 실험' 이라고 하는 기왕의 과학적 방법을 의도적으로 거부하고 참여관찰 방식, 즉 '사귐' 을 선택한 데서 얻은 열매로 보입니다. 사실 주자학에서도 인간과 동물의 성정(性情)이 같은가 다른가를 둘러싼 오랜 인물성동이(人物性同異)논쟁이 있어왔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바뀌고 또 바뀌어 '돌멩이에도 영성(靈性)이 깃들어 있다' 는 김지하적 발상이 환영받는지 모릅니다. 새로운 애니미즘(정령신앙)적인 세계의 도래인 셈이죠. 어쨌든 제인 구달의 자서전은 인류를 위한 새로운 고전이 아닌가 하는 판단도 슬며시 드는데, 한번 읽어보시면서 가늠해 보시지요.

중학생 정도라면 '희망의 이유' 보다는 민음사 판 '제인 구달' 이 읽기에 더 좋습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나온 비디오 테이프 '야생의 침팬지' 등도 자녀와 함께 보시든지요.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