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에 발목 잡힌 베스트바이 … 고졸 CEO 신화도 와르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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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자 앞엔 장사 없다. 미국 소매유통업체인 베스트바이 최고경영자(CEO)인 브라이언 던이 10일(현지시간) 물러나기로 했다. 아마존 등 온라인 유통업체와의 치열한 경쟁 때문에 매출이 기대에 미치지 못해서다. 베스트바이는 지난해 4분기 17억 달러를 손해 봤다. [중앙포토]

고졸 영업사원에서 미국 굴지의 기업 최고경영자(CEO)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 미국 전자제품 소매체인의 최강자 ‘베스트바이’의 성공 신화를 이끈 브라이언 던(Brian Dunn) 이야기다. 그런 그가 9일(현지시간) 돌연 사임을 발표했다. ‘개인적인 행위’에 대한 회사 차원의 내부 조사가 이뤄지고 있는 와중에서라고 뉴욕 타임스(NYT)를 비롯한 미국 언론이 전했다. 더욱이 베스트바이가 지난달 29일 1분기 17억 달러의 적자를 발표한 지 얼마 안 된 시점에 이뤄진 갑작스러운 발표여서 월가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던은 음향기기를 주로 팔던 ‘사운드오브뮤직’이란 소매점이 베스트바이라는 전자제품 양판점으로 이름을 바꾼 직후인 1984년 고졸 사원으로 입사했다. 성실하고 매사에 적극적이었던 그는 고졸이란 약점을 딛고 한 계단씩 ‘유리벽’을 돌파해 나갔다. 그는 늘 입버릇처럼 “나는 영업맨 대학을 졸업했다”며 학력 콤플렉스를 이겨 냈다. 그의 어머니도 베스트바이의 영업직으로 일했다. 90년 미네소타주 본사의 영업점 지배인으로 승진한 뒤 96년 지역 매니저를 거쳐 98년 북동부 지역 부사장에 올랐다. 중서부 작은 소매체인이던 베스트바이가 동부로 진출한 건 이때부터다.

 그는 베스트바이의 초대형 매장 전략을 고안해 낸 주인공이기도 하다. 80~90년대 미국 베이비부머가 가전제품에 대한 소비를 폭발시킬 때 베스트바이는 모든 브랜드 전자제품을 한 매장에 모아 놓은 초대형 매장으로 미국 전자제품 소매업계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베스트바이에 가면 세계의 모든 전자제품 브랜드를 한눈에 보고 비교해 살 수 있다는 브랜드 이미지를 미국 중산층에 확고히 심었다. 이를 무기로 서킷시티를 제치고 미국 최대 전자제품 체인점으로 부상했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 이후 베스트바이의 입지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베스트바이가 역점을 뒀던 스마트폰 보급이 본격화하면서다. 스마트폰으로 무장한 ‘신소비자세대’는 베스트바이를 쇼룸으로만 활용했을 뿐 실제 구매는 온라인에서 하기 시작했다. 신제품이 나오면 성능을 비교하는 시연장으로 베스트바이를 활용했을 뿐 구매는 베스트바이보다 싼 아마존닷컴과 같은 온라인 사이트를 이용했다는 얘기다. 애플이라는 강력한 경쟁자의 등장도 베스트바이엔 결정타가 됐다. 아이폰과 아이패드에 열광한 소비자가 애플 매장으로 달려갔기 때문이다.

 제곱피트(0.09㎡)당 50.61달러였던 영업이익은 2008년 36.38달러로 떨어진 뒤 지난해 18.52달러로 곤두박질했다. 같은 크기의 매장에서 애플이 1100달러의 영업이익을 올린 것과는 극명하게 대비되는 성적이었다. 급기야 던은 8억 달러의 비용 절감을 위해 50개의 초대형 매장을 정리하면서 18만 명에 달하는 종업원 가운데 400명을 정리해고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베스트바이 이사회는 던의 지도력으로는 위기를 극복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그의 사퇴를 압박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새 CEO를 뽑을 때까지는 마이크 미캔 이사가 임시 대표를 맡을 예정이다.

 던은 물러나기로 했지만 베스트바이는 위기를 어떻게 돌파할지 아직 구체적인 청사진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새 CEO도 베스트바이가 어떤 영업전략으로 거듭나야 할지를 제시하느냐에 따라 정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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