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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이후 경제 어쩌나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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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5호 02면

4월이 되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이가 T S 엘리엇이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읊었던 그 시인 말이다. ‘죽은 땅에서도 라일락이 자라고 추억과 정염이 뒤섞여 잠든 뿌리가 봄비로 깨어난다’는 구절은 압권이다. 화려한 축제에 가려진 잔인한 잉태라고 하는, 변증법적 역설 때문이다. 올해의 4월은 더 그럴 거다. 총선이라는 화려한 축제가 끝나면 그 속에 가려져 있던 잔인한 역설들이 쏟아져나올 거다.

김영욱의 경제세상

당장 우려되는 게 포퓰리즘 공약의 현실화다. 어느 쪽이 다수당이 되든 복지지출은 급증한다. 기획재정부 추산에 따르면 양당의 복지공약 이행에 최소 268조원이 더 들어간다. 연간 54조원꼴이다. 지방재정을 제외한 최소치라고 하지만 설령 그렇다 해도 올해 복지지출 92조원을 합치면 한 해 예산의 절반 정도를 복지에 쓴다는 계산이다. 이런 나라 살림이 온전할 리 없다는 건 삼척동자도 알 일이다. 지금 당장 지방이 난리를 치는 게 그 방증이다. 무상급식과 무상보육 등에 들어가는 돈 때문에 재정이 거덜나게 생겼다지 않은가. 이 때문에 서민이 더 피해를 보는 역설도 속출하고 있다. 물론 증세나 국채 발행을 통해 재정위기를 막을 순 있다. 그렇더라도 경제에는 치명상이다. 복지지출이 예산의 절반 가까이 되면 미래를 위한 투자나 성장 잠재력의 확충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세금을 급격히 늘리면 내수가 꽁꽁 얼어붙는다. 복지지출을 늘려야 한다는 당위성에는 찬성하지만 문제는 단기간에 규모를 확 늘리겠다는 포퓰리즘이다. 현재 세대가 잘살겠다고 후손에게 빚을 떠넘기는 것도 잔인한 짓이다.

또 하나 우려되는 건 정부의 인위적 경기부양이다. 슬슬 발동을 거는 게 예사롭지 않다. 지난해 짰던 올해의 경제정책 방향은 대체로 맞았다. 유로존 등 해외경제 불안요인에 대응할 재정 여력을 남기겠다는 방향 말이다.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3%대 저성장을 하더라도 경기부양을 자제하겠다는 초심은 기특했다. 선거철이나 정권 말이면 경기를 억지로 부양했던 과거와의 단절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어쩌랴, 역시 인간의 욕심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겉으론 경제 살리기라지만 속으론 정치적 이해타산이다. 12월 대선을 앞둔 여당과 정부의 이해관계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지점이라서다.

가장 우려되는 건 레임덕(임기 말 권력누수) 현상이다. 정권의 식물화 가능성 얘기다. 총선이 끝나면 정부 힘은 급격히 떨어진다. 꼭 필요한 정책도 국회를 통과할 동력을 잃는다. 정치권의 예산 증액 공세를 막는 것도 쉽지 않다. 특히 문제 되는 건 취약한 위기 대응 능력이다. 국내 문제가 없으면 그나마 위기 걱정은 덜할 텐데, 가계부채나 저축은행 부실 같은 화약고가 산적해 있다. 이런 터에 스페인이나 이탈리아의 국가부도 사태가 발생하면 곧바로 국내에 불길이 번진다. 그나마 정부가 신속하게 대응한다면 위기는 단기간에 수습되지만 정권 말엔 그렇지 않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100년 만의 위기라고 했지만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빨리 극복하지 않았던가. 정부의 신속한 대응 덕분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럴 것 같지 않다. 김영삼 정부 말년에 터진 외환위기가 그러했다. 1997년 기아차 등 수많은 재벌그룹이 쓰러졌을 때다. 정부가 신속하게 돈을 풀어 은행 부실화를 막았다면 외환위기는 일어나지 않았을 게다. 실제로 당시 정부는 20조원이란 막대한 돈을 은행에 풀려고 했다. 부실화를 우려한 외국인투자자의 불안감과 국외 자금 유출을 막을 수 있다고 판단해서다. 하지만 정치권은 그해 12월의 대선에만 매달려 있었고, 레임덕 현상은 정부 대책을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이번 총선에서 누가 이기든 그다지 개의치 않는다. 다만 한 가지 바라는 게 있다면 화려한 축제 뒤에 잔인함이 숨겨져 있다는, 4월의 지혜를 가진 후보가 많이 당선되는 거다. 국내외 경제불안 요인을 점검하고, 정부에는 철저한 사주경계를 강력히 주문하고, 과잉 복지와 인위적 부양책의 위험성을 지속적으로 경고하는 후보들 말이다. 참, 이러다가 나도 선관위로부터 경고받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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