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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만든 보석, 양식 진주의 원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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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5호 25면

진주는 오묘한 보석이다.연마 과정을 통해 면과 면이 만나 직선의 아름다움을 빛내는 광물 보석과 달리 진주는 자연 그대로의 부드러운 곡선미를 뽐낸다. 살을 뚫고 들어온 이물질을 인고의 세월을 품은 조개는 매끈하고 윤기 나는 완전 구체로 완성한다.

브랜드 시그너처 <18>MIKIMOTO

오늘날 오염과 남획 탓에 자연에서 우연히 생성된 ‘천연 진주’의 맥은 거의 끊어졌다. 대신 사람이 진주의 아름다움을 빚는다. 조개에 이물질을 삽입해 양식하는 것인데, 인위적으로 만든 보석의 값어치는 떨어지게 마련이지만 진주는 예외다. ‘인공적인 진짜’ 보석을 만든 건 일본의 미키모토 고키치(사진)였다. ‘진주왕’이라 불리는 그는 1905년 최초로 완전한 구형의 진주 양식에 성공했다.

그는 1858년 시마반도의 바닷가 마을에서 우동가게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고향은 진주가 특산물인 지역. 일찍부터 진주 채취를 보며 자란 그는 10대 시절 가계를 돕기 위해 과일 행상에 나섰다가 요코하마 무역박람회에서 진주가 고가에 거래되는 것을 보고 1888년 진주 조개 양식장을 만들었다.

하지만 적조와 태풍 속에서 실패를 거듭했다. 파산 위기 끝에 1893년 첫 성공을 거뒀다. 비록 반원형이었지만 인간의 손으로 진주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리고 3년 뒤 특허 등록과 함께 세상의 공인을 받았다. 3년이나 시간이 걸린 건 생물에 특허권을 준 전례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1899년 도쿄의 중심 긴자에 첫 진주 매장을 열었고 1905년엔 드디어 천연 진주와 다를 바 없는 동그란 진주 양식에 성공했다. 이 역시 특허를 취득했다. 그 공으로 미키모토는 이세 신궁에서 메이지 일왕을 만났는데, 이 자리에서 그는 '전 세계 여성의 목을 진주로 장식하겠다'고 공언했다. 한 알로 집 한 채를 살 만큼 비싼 보석이었던 진주는 미키모토 덕분에 더 많은 여성이 착용할 수 있게 됐으니 그의 말대로 된 셈이다.

1913년 런던에 직영점을 열었고 1927년부터 1933년까지 뉴욕·파리·시카고 등에 매장을 열며 세계 진출을 시작했다. 또 1만2250개의 진주와 366개의 다이아몬드를 사용해 필라델피아 '자유의 종'을 재연한 작품을 뉴욕 박람회에 선보이는 등 국제적 명성을 쌓는 데에도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유럽 시장에 나온 양식 진주는 거센 논란을 일으켰다. 유럽의 보석상들은 미키모토가 교묘한 모조품으로 시장을 교란하고 진주의 가치를 떨어뜨린다고 비판했다. 미키모토의 손을 들어준 건 과학자였다. 영국의 동물학자 리스터 제임스 박사가 1922년 과학잡지 ‘네이처’를 통해 “생물학적으로 미키모토의 진주는 천연 진주를 형성하는 모든 조건을 만족한다”고 밝힌 것이다. 논란은 종지부를 찍었고 미키모토는 진정한 보석으로 인정받게 됐다.

1954년 결혼한 메릴린 먼로와 조 디마지오는 일본으로 신혼여행을 떠나 긴자의 미키모토 매장에 들렀다. 디마지오는 당시 가장 큰 진주목걸이를 먼로에게 사줬다. 9개월 만에 파경을 맞긴 했지만 미키모토 진주는 세기의 사랑의 증표였다. 미키모토는 1990년대 경매에 나온 이 목걸이를 다시 사들여 소장하고 있다.

보통 보석 브랜드들은 울퉁불퉁한 원석을 깎고 다듬어 값지고 귀한 보석으로 변모시킨다. 미키모토는 아예 양식 진주라는 새로운 보석을 탄생시켰다. 이 때문에 미키모토는 보석상이라기보다 발명가로 여겨진다. 1985년 일본 특허청은 공업소유권제도 시행 100주년을 기념해 ‘일본의 위대한 발명가 10인’을 선정했다. 미키모토는 양식 진주 특허의 공로를 인정받아 여기에 포함됐다. 일본의 특허청엔 그의 부조상이 영구 전시되고있다. 도요타의 창업자 도요타 사키치, 비타민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스즈키 우메타로, 인체의 호르몬 아드레날린을 최초로 발견한 다카미네 조키치등 세상을 바꾼 혁신적인 과학자·발명가와 함께다.

형태와 색상에서 최상급 진주를 ‘꽃진주’라고 부른다. 일본어 ‘하나다마(花球)’에서 나온 말로, 전 세계에서 ‘hanadama’로 표기된다. 서구 브랜드 중심으로 재편된 명품 산업에서 진주만은 일본이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는 의미다. 물론 미키모토가 있어 가능한 일이다.
현재 미키모토 진주는 대한항공 기내 면세점에서 단독 판매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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