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프로야구] 정민태에게 바란다

중앙일보

입력

올시즌 종료후 정민태는 평소 그토록 갈망하던 요미우리행을 드디어 이루었다. 그의 요미우리 입단을 두고 한국선수끼리 경쟁한다는 우려도 있지만, 정민태 본인은 반드시 10승 이상 거두겠다는 강한 자신감을 숨기지 않고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의 전례로만 본다면 정민태의 데뷔 첫해 활약은 그리 쉽지 않아 보인다. 그동안 한국선수들은 일본진출 첫해에 하나같이 부진에 빠지며 '첫해 징크스'에 시달려 왔기 때문이다. 정민태가 이들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선 어떤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할지 알아보자.

1. 자만은 금물
96년 일본에 진출한 선동열은 그야말로 자신에 넘쳐 있었다. 입단과 동시에 그는 주니치의 최고연봉 선수였고 가장 주목을 받는 선수였다. 호시노 감독은 선동열에게 자신의 백넘버인 20번을 물려줬고, 마무리 자리까지 약속했다.

이런 초특급 대우에 도취한 선동열은 자만에 빠지고 말았다. 스프링 캠프때부터 선동열은 일본식을 거부했다. 훈련도 한국식으로 했고 몸도 빨리 만들지 않았다. 새 구질을 개발해야 되지 않느냐는 질문엔 '내가 한국의 선동열 아닙니까?'라는 호언으로 일축했다. 주니치로선 이런 선동열이 내심 걱정되었지만 선동열이 워낙 절대적인 존재였기 때문에 거의 모든 걸 자율에 맡겼다.

이후 자만에 빠진 채, 한국식을 고수한 선동열의 96년은 처참함 그 자체였다. 한국 최고의 투수라는 자존심은 산산조각이 났고, 시즌말엔 2군으로 쫒겨나는 치욕을 감수해야 했다.

한국으로 돌아가려고 결심했을만큼 힘든 시절이었지만 이후 마음을 다잡은 선동열은 96년 겨울부터 딴 사람이 되었다. 한국 최고였다는 과거는 다 잊어버리고 신인의 마음가짐으로 2군선수들과 같이 훈련했다. 97년 스프링 캠프에서도 선동열은 그 누구보다 착실히 훈련했다.

우선 착실한 훈련으로 직구의 힘을 길렀고, 공 배합도 직구와 슬라이더의 단조로운 패턴에서 벗어나 커브와 체인지업을 연마했다. 그리고 이후 97년부터 작년 은퇴할때까지 선동열은 나고야의 태양으로 떠오르며 3년동안 주니치를 수호했다.

2. 몸을 빨리 만들어야 한다

98년 이상훈과 올해 정민철도 일본생활 첫해를 허송했다. 이 둘이 망친 가장 큰 원인은 일찍 몸을 만들지 못한데 있었다. 먼저 이상훈은 98년 당시 보스턴과의 계약이 뜻밖에 결렬되자, 주니치 입단을 얼떨결에(?) 하게 되었다.

이렇듯 갑작스럽게 일본에 간 이상훈이 첫해를 망친건 어찌보면 당연했다. 몸도 마음도 전혀 일본야구에 대비 되어있지 않은 상황에서 이상훈은 비참할 정도로 얻어맞았고 2군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이후 98년말부터 이상훈은 한국에도 오지않을 정도로 훈련에만 전념한 끝에 99년엔 수준급의 피칭으로 주니치 우승에 큰 공헌을 할 수 있었다.

정민철도 부진도 마찬가지로 설명될수 있다. 99년말 막차로 요미우리 유니폼을 입은 정민철은 기대에 차 있었다. 하지만 엄청난 일본의 훈련량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정민철은 결국 코칭스테프의 신임을 얻지 못하며 2군에서 스타트를 끊어야했다.

후에 정민철은 1군에서 기회를 잡았지만 완전히 몸이 만들어지지 않은 탓에 직구스피드가 140km도 나오지 않는 실망스런 구위를 보여주며 단 4경기만 뛰어 보고 2군으로 떨어졌다. 이후 정민철은 어느정도 컨디선을 회복해 2군리그에서 좋은 피칭을 보였지만 이미 나가시마 감독의 신뢰를 잃은 상황이었다.

3. 정민태에게 필요한 것

주지하다시피 정민태의 주무기는 직구와 슬라이더다. 그리고 정민태는 바깥쪽 승부를 즐기는 편이다. 이걸로 정민태는 한국에서 100승을 했다.

하지만 96년 선동열의 예에서 알 수 있듯 이런 투구패턴은 일본야구에 적합하지 않다. 일단 구질이 단조로우면 일본타자들에게 자꾸 커트당한다. 그리고 바깥쪽 승부는 짧게 끊어치는에 능한 일본야구에 효과적이지 못하다.

또한 일본야구는 상하에 비해 좌우 스트라이크 폭이 좁은 편이다. 바깥쪽을 잘 던지고 슬라이더에 능한 정민태에게 불리하다. 거기다 정민태는 용병이다. 스트라이크존에 알게 모르게 불이익을 받을 확률이 높다.

더구나 정민태는 선동열처럼 마무리를 할 것도 아니기 때문에 단순한 구종을 가지고 힘으로 밀어 붙이는덴 한계가 있다. 따라서 포크볼이나 커브등 아래로 떨어지는 新구종의 연마가 필수적이다.

한국의 많은 야구팬들은 정민태를 현역 한국 최고의 투수로 평가한다. 일본신문도 정민태가 요미우리 입단을 확정짓자 '한국의 넘버원이 요미우리로 온다'고 기사를 뽑았다.

하지만 비록 다승왕을 차지했고 팀의 우승까지도 이끌었지만 올시즌 정민태는 엄격히 따져보면 작년만 못했다. 솔직히 올해정도 구위로 일본야구에서 던진다면 10승은 커녕 1군진입도 불확실하다고 생각한다.

이제 정민태에게 무엇보다 요구되는 것은 한국의 일급 투수였다는 것은 빨리 잊어버리고 신인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철저히 그리고 빨리 일본야구에 적응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