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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액 정치 후원금 낸 사람 직업·성씨 등 정보 공개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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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300만원 이하 소액 정치 후원금이라도 기부한 사람의 직업·성씨 등 일부 정보는 공개할 수 있다’는 법원의 첫 판결이 나왔다. 이는 일명 ‘쪼개기 후원금’이나 전교조 등 교사 및 공무원의 기부 등 소액 후원금 제도의 맹점을 악용한 정치자금 기부 행위를 막기 위해서라면 소액 후원 관련 정보를 공개할 수 있다는 취지다.

 현행 정치자금법상 정치자금 입출금 내역을 기록한 회계보고서는 기본적으로 공개 대상이지만, 연간 300만원(대통령 후보는 500만원) 이하의 소액은 공개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부장 심준보)는 지난해 한 인터넷 매체 소속 김모 기자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상대로 “취재 목적상 필요하니 2004~2008년 당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이주호 의원(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에게 연간 300만원 이하 정치자금을 후원한 사람들의 직업을 볼 수 있게 해달라”며 낸 정보 비공개 결정 취소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고 5일 밝혔다.

 재판부는 “소수의 특정 집단이 전체 유권자의 정치 의사를 왜곡하지 못하도록 감시하려면 국민이 정치자금의 형성과 관련된 정보에 접근할 기회가 최대한 보장돼야 한다”며 “(기부자의 직업은) 정보공개법에 명시된 ‘공공기관이 작성한 정보로 공개하는 것이 필요한 경우’에 해당된다”고 설명했다. 기부한 사람의 신원을 곧바로 알아볼 수 없는 한, 개인의 사생활 침해보다 정치자금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공익적 효과가 더 크다고 본 것이다. 나아가 재판부는 “직업은 물론 성씨나 주거지의 읍·면·동 단위를 공개하더라도 탈법적인 목적이 없는 한 개인의 후원 이 위축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판결 이유에서 “최근 ‘쪼개기 후원’이나 정치적 행위가 금지되는 공무원·교원의 기부 등 소액 후원금 제도의 맹점을 악용해 정치자금을 조성했다는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특히 직능·직역 단체가 구성원을 동원해 소액 후원금을 정치인에게 몰아주는 방법으로 정치적 의사결정을 왜곡할 위험성이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소액 후원금 제도의 익명성을 악용한 ‘쪼개기 후원금’은 2010년 ‘청목회’ 사건으로 사회문제화됐다. 이 사건으로 민주당 최규식 의원 등 여야 의원 6명이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사법 처리됐다. 하지만 지난 2월 국회는 법인이나 단체가 구성원의 이름으로 쪼개서 낸 후원금일지라도 이것이 단체 자금임을 입증하지 못하면 처벌할 수 없도록 정치자금법을 개정해 비난을 샀다.

 한편 김 기자는 지난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이 장관의 의원 시절 후원회 정기 회계보고서에 등장하는 기부자의 정보를 공개하라고 요청했으나 선관위가 “성씨·금액·주거지에서 동까지 표기한 자료만 제공하고, 직업을 포함한 기타 정보는 공개할 수 없다”고 결정하자 소송을 냈었다.

이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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