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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를 기회로 만든 케인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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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을 내지 못하는 기업은 기업이 아니다." 굳이 강조할 필요도 없이 지극히 당연한 논리지만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렇게 천명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11·3 기업 퇴출 조치에서 보듯이 이익을 내지 못하는 기업들에 대한 처리는 여전히 만족스럽지 못하며, 현대건설 사태에서 보듯이 대마 불사라는 말은 여전히 바둑 용어에 국한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왜 그럴까?

마약을 끊기 위한 고통은 고통이라 부르지 않는다. 주사가 아프다고 맞지 않는다면 병을 고칠 수 없다. 지금 우리가 겪는 경제적 고통은 사실 자본주의의 단계를 생략한 데서 생겨난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과정이므로 결코 '겪지 않아도 되는 고통'인 것이 아니다.

그동안 우리는 산업, 상업 자본주의를 자본주의의 요체로 알았다. 그러나 그건 자본주의라고 할 수도 없을 만큼 기본적인 원리다. 물건을 싸게 만들어 비싸게 판다는 것, 물건을 싼 데서 사서 비싼 곳에 판다는 건 고려시대 개성상인들도 잘 아는 원리니까 굳이 자본주의라 할 것도 없다. 자본주의의 핵심은 금융이다. 60, 70년대 개발독재 시대를 거치면서 정부와 기업은 금융을 산업과 상업의 시녀로만 이해해왔다(산업과 상업 자본주의에선 남부러울 게 없는 일본이 경제 위기를 겪고 있는 이유도 바로 금융에 대한 몰이해 때문이다).

금융의 고약한(?) 점은 기업이 잘 나갈 때는 겉으로 문제가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마치 장기들이 멀쩡히 기능할 때는 혈액 순환 같은 걸 걱정하지 않는 것과 같다. 금융의 문제가 새삼 눈에 들어오는 때는 기업이 부실해지고 경제 전체가 위기의 징후를 드러내는 시기다. IMF 사태를 거치고서야 비로소 우리는 그런 금융의 의미를 어렴풋하게나마 인식하게 되었다.

위기가 곧 기회라는 말은 위기의 정체를 정확히 인식하고 제대로 준비하지 않는 자에게는 쓸데없이 마음의 위안만을 주는 선문답일 뿐이다. 지금 우리는 비정상적 자본주의가 처한 위기에 시달리고 있지만 정상적 자본주의도 큰 위기에 처한 사례는 꽤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1929년의 대공황일 것이다. 이 위기의 정체를 제대로 파악한 사람이 바로 케인스다. 그는 30년대의 'IMF 사태'를 어떻게 극복하자고 했을까?

자본주의의 초창기를 이끌었던 고전파와 그것을 계승한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은 경제 이론에는 강했으나 경제 현실에 둔감했다. 따라서 그들은 대공황이라는 '현실의 대사건'을 설명하는 데 무기력했다. 후대에 나온 말이지만 "경제학자가 현실에 무심하다면 나비를 수집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말도 있는데, 그들은 왜 그랬을까? 물론 일부러 현실에 둔감했던 게 아니라 그들의 경제 이론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신고전파 경제학은 무엇보다 생산을 중심으로 하고 있었다. 주어진 생산 요소를 어떻게 활용하면 생산을 극대화할 수 있는가가 그들의 화두였다. 그런 만큼 생산과 짝을 이루는 요소인 수요, 즉 소비는 그들의 고려 대상에서 늘 빠져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제국주의적 팽창 정책이 정상적으로 돌아가고(이는 곧 시장이 언제나 마련되어 있다는 뜻이다) 완전 고용이 이루어지던 번영의 시대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그러나 제국주의적 세계 분할이 완료되고 세계 시장이 바닥나게 되자(1차 세계대전) 자본주의적 생산은 과잉 상태에 이르렀고 이것은 대공황이라는, 자본주의 역사상 최대의 시련을 불러일으켰다.

1936년에 나온 케인스의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 이론>은 바로 그 현실의 대사건에 대한 해결책을 제안하고 있다. 핵심은 발상의 전환에 있다. 고전 경제학의 전통에서 자유로웠던 데다, 탁상공론적인 경제 이론보다는 특정한 현안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게 경제학의 본질이라고 보았던 케인스의 실사구시 정신은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발상의 전환을 시도한다. 그것은 바로 생산이 아니라 반대로 소비를 중심으로 경제를 본다는 것이다.

"현대의 상황에서 부의 성장은 부자의 절약과 절제에 의거하는 것이 결코 아니고, 오히려 그것에 의해 저해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보이지 않는 손'이 경제를 지배한다는 자유방임주의를 기본으로 경제 현실을 바라보는 고전 경제학자들에게는 '터무니없는 소리'였으나, 공황이라는 '경제적 흑사병'을 치유하는 데는 탁월한 효과를 발휘했다.

케인스는 생산된 가치가 이윤으로 실현될 수 있는 소비, 즉 유효수요의 개념을 기반으로 대공황을 설명한다. 대공황이 발생한 원인은 유효수요의 부족에 있었으며,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자본주의 경제는 주기적인 공황의 파국으로부터 결코 벗어날 수 없다는 게 그 요체다.

이러한 유효수요의 개념은 이렇게 공황을 설명하는 데서 더 나아가 현실의 경제 정책에 실제로 적용되어 실효를 거두기도 한다. 대공황으로 인해 대량으로 생겨난 실업자들을 동원해서 댐을 지은 미국의 대규모 국책 사업인 뉴딜은 그 대표적인 예다(IMF로 늘어난 실업자들을 공공 사업에 동원하려는 우리 정부의 정책도 이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 이론>은 거시 경제학이라는 경제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케인스는 거시 경제학이야말로 경제학의 본령을 이룬다고 믿었다. 그가 이 책에 '일반 이론'이라는 제목을 붙인 이유는 "고전 경제학은 특수한 경우에만 타당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완전 고용과 소득의 평등 상태를 전제로 하는 고전 경제학에 비해 불완전 고용(실업의 존재)과 소득의 불평등이라는 현실을 인정하고 출발한다는 점에서 케인스의 '일반 이론'은 타당한 용어일 것이다.

케인스가 자유방임주의의 한계를 지적했듯이 지금 우리의 상황도 '관치'의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국가의 경제 개입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 그러나 경제적 현실이 달라지면 경제 이론도 달라지는 게 당연하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건 케인스의 경제 이론이 아니다. 케인스에게서 정작으로 배울 것은 이론이 아니라 발상의 전환이다.

감기는 앓아야 낫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는 것도 그러한 발상의 전환이다. 감기는 '제대로' 앓지 않으면 더 큰 병으로 전화될 수 있다. 자본주의의 정상적인 궤도에서 이탈한 대가를 지금 치르고 있는 것이라할 때, 이왕이면 제대로 치러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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