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식기자의 터치다운] 각본없는 드라마 맞수대결

중앙일보

입력

라이벌전은 이변이 많고 스타는 큰 경기에서 탄생한다고 했던가.
18일 LA의 최대 스포츠 이벤트인 남가주대(USC) 트로잔스-UCLA브루인스의 맞수대결은 미식축구의 진수를 한껏 보여준 명승부였다.

5개씩의 터치다운을 서로 주고받는 백병전끝에 USC의 4년생 키커 ‘데이빗 벨’은 종료 9초를 남기고 극적인 36야드 필드골을 성공, 승리의 상징인 ‘빅토리 벨’을 트로이 군단 몫으로 하는데 1등공신이 되며 최고의 졸업선물을 남겼다.

LA타임스는 “저력있는 팀은 어려운 상황에서 빛을 발한다”며 “LA 챔피언십을 다투는 USC-UCLA 싸움은 통계수치가 아무 의미없는 정신력 대결”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라이벌전은 과거와 달리 두학교 성적이 부진했던 탓에 LA데일리뉴스는 ‘화장실 보울’이라고 비아냥, 두 학교 동문들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확실히 이번 라이벌전은 전국챔피언 티킷·로즈보울 진출권등 ‘미끼’가 걸린 경기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런 이유 때문에 70회를 맞은 라이벌전의 의미가 감소되지는 않았다.

감소는 커녕, 이날 UCLA의 7번째 홈경기에 운집한 8만관중은 브루인스의 역대 한시즌 최대관중(47만명) 기록을 수립하는 기염을 통했다. 만원을 이룬 UCLA와 USC의 팬들은 “다른팀을 전부 물리쳐도 숙적과의 맞대결에서 지면 아무소용 없다”며 모교 고향팀을 눈물겹게 성원했다.

킥오프부터 종료휘슬이 울릴때까지 두 학교 모두 10승무패를 내달리는 팀처럼 최선을 다했다. 승패 또한 마지막 9초를 남기고 결정된 한편의 ‘각본없는 드라마’였다. 개교 120년만에 처음으로 퍼시픽-10 컨퍼런스 꼴찌로 추락, 최악의 상황속에서 역전승을 거둔 USC는 시즌 막판 최소한의 체면을 세운 반면 UCLA는 “올시즌 업적이 아무 소용 없게 됐다”고 눈물을 흘려 대조를 보였다.

‘미국 스포츠의 메카’로 불리는 로즈보울 경기장은 또한 많은 한인 유학생·교포가 찾아와 모교를 응원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첫 득점의 발판도 한국인 어머니를 둔 UCLA 라인배커 토니 화이트<본보 10월31일자 c-1면 보도>의 작품이었다. 화이트는 경기 시작 20초만에 USC의 펌블을 유도하며 터치다운을 일궈냈다.

올시즌 10경기에서 모두 선취점을 내준 UCLA는 화이트의 수훈덕에 첫 리드를 잡았음에도 불구, 10년만에 홈구장에서 패배하는 아이러니를 겪어야 했다. 20년동안 UCLA 헤드코치로 재직한뒤 프로풋볼(NFL) 샌프란시스코 49ers의 부단장으로 옮긴 테리 도나휴의 응원도 허사였다.

결국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며 배수진을 친 USC의 투혼이 돋보인 반면 UCLA는 수비진의 집중력이 떨어진 모습을 드러냈다.

올시즌을 마지막으로 해고될 예정인 USC의 폴 해킷 감독은 NCAA가 규정한 ‘원정팀 흰색 유니폼 착용’규정을 무시하고 전통적인 진홍색 상의를 입으려다 막판에 저지되기도 했으며 쿼터백 카슨 파머는 자신의 기록인 350야드 전진·터치다운 패스 4개를 기록하며 ‘수퍼 토요일의 스타탄생’을 자축했다.

고희를 넘어선 양교의 라이벌전은 이제 21세기인 내년 11월 다시 팬들에게 선보일 것이다. LA 학교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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