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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영아 여론 女論

명사의 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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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이영아
명지대 방목기초교육대학 교수

1941년 12월 27일 오후 6시 경성 부민관 대강당에서 ‘조선임전보국단’이 주최한 ‘결전부인대연설회’가 열렸다. 박인덕의 인사말로 시작된 이 연설회는 임효정, 최정희, 김활란, 박순천, 임숙재, 허하백, 모윤숙 순으로 연설이 진행됐다. 장내는 2000여 청중으로 성황을 이뤘다[‘가정도 전장(戰?)이다, 참가하라 이 정전(征戰)에-작야(昨夜), 결전부인대연설회의 성황’, ‘매일신보’, 1941.12.28].

 이들 연설의 상세한 내용은 그 후 잡지 ‘대동아’(1941.3)에 ‘반도 지도층 부인의 결전보국의 대사자후(獅子吼)!’라는 제목으로 실리기도 했다. 이 연설들은 모두 태평양전쟁을 찬양·옹호하고, 여성들에게 직접 전쟁터로 나가거나, 후방에서 가정을 잘 꾸려가야 함을 역설한 노골적인 ‘친일’과 ‘동원’의 연설들이었다.

 이 연설회의 연사들은 ‘조선 지도계급 부인’들이었다. 임효정은 여자상업학교 교수, 최정희는 소설가, 김활란은 이화여전 교장, 박순천은 농촌 지도자, 임숙재는 숙명여전 교수, 허하백은 배화고녀 교사, 모윤숙은 시인이었다. 조선 여성들의 보통학교 취학률이 30%대로 겨우 10만 명 정도밖에 안 되던 1940년대에 이 연사들은 대부분 고등교육에 외국 유학까지 마친 초엘리트 여성들이었다. 그만큼 사회적 명성을 얻었고, 대중으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기 때문에 이들의 발언에는 강한 영향력이 있었다.

 당시에 지도층 여성들이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조선 여성아!’를 외칠 때면 ‘설거지하던 여염집 부인들이 눈을 껌벅껌벅하며 라디오 옆으로 달려오고야 만다’고 할 정도였다(‘방송야화’, ‘삼천리’, 1934.11). 이런 그들이 연설회를 열어 청중에게 우리 조선 여성들도 일본 신민으로서 이 ‘거룩한 전쟁’을 위해 자신의 임무를 다해야 한다고 외쳤던 것이다.

 이들의 친일 행각에 대한 비판은 재론할 여지조차 없지만 이것의 또 한 가지 심각성은 그들 ‘지도층’ ‘유명인사’에게 주어지는 발언권에 있다. 사회 고위층, 자산가, 유명인 등에게 세상은 너무 많은 관심을 보여준다. 그들의 말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그들의 행위가 옳은지 그른지는 따지지도 않고 우리는 너무 쉽게 그들의 말을 들어준다. 그리고 가끔 옳지 않은 말과 행동에도 ‘유명하니까’ 봐주고 믿어주기도 한다.

 총선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선거에는 부디 “그래도 이 이름은 들어봤으니까”와 같은 후보의 인지도·유명세만으로 국회의원을 선택하는 유권자는 없었으면 한다. 그래서 이름을 알릴 수만 있다면 막장발언, 노이즈 마케팅도 서슴지 않는 저질 정치인들은 이번 기회에 모두 사라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영아 명지대 방목기초교육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