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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 착한불륜이 어딨냐 화 내면서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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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김희애가 집 나올 만하지. 그 시댁 식구들이 얼마나 못 됐니.”

 “아무리 그래도 애를 국제중 입시반에 넣어놓고 학원장 남편이랑 눈이 맞으면 어떡하니.”

 주말인 지난달 31일 서울 압구정동의 한 백화점. 40대 주부 6명이 동창 모임을 하고 있었다. 이들의 화두는 요즘 JTBC에서 인기리에 방송 중인 수목드라마 ‘아내의 자격(아격)’. 일산·문정동·홍제동 등 사는 곳은 다 달랐지만 주부들은 “수요일·목요일 저녁엔 열 일 제쳐놓고 ‘아내의 자격’을 본다”고 말했다. 주부 민혜경(43)씨는 “주변에 ‘아내의 자격’ 안 보는 사람이 없어요. 동네 엄마들이랑 만나도 ‘아내의 자격’ 얘기가 꼭 나와요”라고 말했다.

 김희애·이성재 주연의 ‘아내의 자격’은 지난달 29일 10회분 시청률이 3.47%(AGB닐슨 수도권 가구 기준), 순간 시청률 4.976%를 기록해 지상파 3사를 제외한 전 채널 1위였다. 게다가 ‘아내의 자격’ 시청률은 첫 회 1.36%에서 계속 상승 중이다.

 이 같은 흥행의 비결은 ‘사교육 현실’과 ‘순진한 불륜’이란 게 시청자들의 말이다. ‘아내의 자격’은 자유로운 교육을 추구하던 주부 윤서래(김희애)가 국제중에 딸을 입학시킨 시누이를 보고 자극받아 대치동에 입성해 벌이는 고군분투기를 다룬다. 서래는 그 과정에서 치과의사 김태오(이성재)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아내·엄마가 아닌 여자로서의 삶을 이어간다.

 서울 대치동 학원가에서 만난 주부 김어진(43)씨는 “청명국제중·iBT 같은 용어부터 엄마들이 찻집에 모여 입시 정보 주고받는 모습, 대치동 아파트와 학원가의 일상 같은 게 모두 소름 끼치게 리얼하다”고 말했다. 박세영(47)씨도 “나도 우리 애 외고 보낼 때 같이 준비하는 애들 엄마들하고 그룹 지어서 학원 선생님 쫓아다녔는데 그 얘기가 ‘아내의 자격’에 똑같이 나온다”고 말했다. 일그러진 사교육 현실 속에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하고 고민하지만 결국 자녀를 위한다는 명분 아래 하고 만다는 대치동의 모습이 ‘아내의 자격’에 고스란히 녹아 있는 것이다.

 불륜 관계인 서래와 태오가 각각 허영에 찌든 시댁과 현실영합적인 아내(이태란)에 비해 순진하고 이상적으로 묘사되는 점도 흥행의 원천이다. 주부 김진희(33·서울 공덕동)씨는 “김희애 시댁 식구들은 교양 있는 척하면서 김희애를 구박하고 돈·연줄로 모든 걸 해결하려 든다”며 “불륜은 문제지만 그런 시댁을 보면 김희애를 동정하게 된다”고 말했다. 표민주(48·서울 중계동)씨도 “우리 시어머니는 ‘착한 불륜’이 어딨냐’고 역정을 내시면서도 ‘아내의 자격’을 매번 보신다”며 “착한 김희애와 이성재가 영악한 시댁과 아내를 떠나는 걸 이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자연광을 최대한 활용해 뿌옇게 비춰지는 영상효과와 향수를 자극하는 올드팝 배경음악도 인기몰이에 한몫하고 있다. 4일 오후 8시45분 방송될 ‘아내의 자격’ 11회에선 서래가 고깃집에서 일한다는 사실을 태오가 알아내고 혼자 소주를 마시며 마음을 달랜다.

 ‘아내의 자격’ 이외에도 월화 미니시리즈 ‘신드롬’, 주말특별기획 ‘인수대비’ 등 JTBC 드라마는 모두 시청률 2% 이상을 기록하며 순항하고 있다.

박성우·하선영 기자

아내의 자격 명대사

“나 그때 알았어. 이 사람 남자다. 나 여자다. 십수 년 만에 처음으로 나, 여자 윤서래, 기쁘더라. 또 떨리고, 좋았어.”

-서래(김희애)가 동생 미래에게 태오(이성재) 얘기를 하며

“다양성의 시대니 뭐니 하지만 인간 딱 두 부류야. 갑과 을. 누구두 바꿀 수 없어. 인간 세상의 속성이야. 나는 내 아들이 갑이믄 좋겠거든?”

-서래 남편 상진(장현성)이 아들 결의 교육 얘기를 하며

“다들 강남 좌파라고 폼 내고 사는데 이 남자는 왜 그렇게 못할까. 화염병 만들던 애들이 빈티지 와인 마시고, 가끔 소탈한 척도 해야 하니까 막걸리도 있는 종류대로 골라 마시고, 다들 그렇게 사는데 왜 이 남자는 그걸 못하나.”

-지선(이태란)이 남편 태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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