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희 사건 5년 만에 … 또 교민사회 충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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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오클랜드 오이코스대 권총 난사 사건 소식을 접한 미주 한인사회는 경악과 비탄에 휩싸였다. 더 나은 삶을 위한 배움의 자리에서 일어난 비극이라 충격은 더욱 컸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자영업을 하는 권영일씨는 “북캘리포니아에서 오래 살았는데, 한인이 저지른 총기 난사 사건은 이번이 거의 처음”이라며 “무서워서 자녀를 밖에 내보내지 못할 것 같다. 이 나라는 총기 소지를 규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교민들의 속마음을 엿볼 수 있는 미국 현지 사이트에는 놀라움과 우려를 담은 댓글이 속속 올라왔다. 미주중앙일보 사이트(www. koreadaily.com)에는 범인이 ‘한국계로 추정되는 아시아계 남성’이라고 알려진 직후만 해도 “한국인이 아니었으면…”(Jun Chang)하는 바람이 많았다. 곧이어 한국계 남성으로 밝혀지자 “제2의 조승희 사건이구먼. 또 한국인 대망신” 등 집단적 자책감을 드러냈다. 재미 한인 여성이 주로 이용하는 ‘미시유에스에이’에도 비슷한 반응이 많았다. 일부 네티즌은 “미국에서 저렇게 돌아버리는 한국 사람을 보면 억눌린 게 많아 보여요”라고 동정을 표시했다. 그렇지만 “총질까지 할 만큼 억눌린 이민자라는 변명은 통하지 않을 것 같다”는 반론도 올라왔다.

 이번엔 2007년의 ‘조승희 사건’ 때보다는 개인의 문제일 뿐이라는 시각이 강해졌다. 범인 고원일씨 역시 무늬만 한국인일 뿐 엄밀히 말해 법적, 경제활동 측면에서 미국인인 만큼 한국이나 한국민, 다른 한인이 책임져야 할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조승희 사건 당시 미국 언론들은 한국인들이 한국계 미국인의 범죄에 집단적 죄의식을 느끼는 것 자체를 특이한 현상으로 보고 집중 조명했다. 뉴욕타임스는 당시 “한국 여론은 이번 사건이 미국 내 한인들에 대한 편견을 심화시키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 언론들은 이번 권총 난사 사건을 사실 위주로 비중 있게 다뤘다. LA타임스 등 미국 언론의 온라인 사이트에서 한국계라는 걸 특별히 문제 삼는 댓글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특히 총기류 소지를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았다. 오클랜드 동포사회는 교회를 중심으로 3일(현지시간)부터 희생자 가족을 위로하는 등 한인커뮤니티를 포함해 오클랜드 사회 전체가 이번 사건의 충격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각종 활동을 강화하기로 했다.

샌프란시스코지사=황주영 기자, 서울=허귀식 기자

◆조승희 사건=2007년 4월 16일 미국 동부 버지니아공대에서 이 대학 영문과 4학년이던 한국인 미국 영주권자 조승희(당시 23)씨가 권총을 난사해 학생과 교직원 32명을 숨지게 한 사건. 미국 역사상 최악의 총기 난사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조씨는 범행 후 자살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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