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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힌 홍어 즐기는 독일인 "한국 갤럭시 보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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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한국베링거인겔하임의 군터 라인케(61·사진) 사장은 요즘 ‘내 일부는 여기에 계속 남을 것이오(Niemals geht man so ganz)’라는 독일 노래를 흥얼거린다. 가끔씩 감정이 북받친 목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정든 한국을 떠날 날이 얼마 안 남았다는 생각에 울컥해진 것이다.

 라인케 사장이 15년간의 한국생활을 끝내고 고향인 독일 쾰른으로 돌아간다. 다음 달 말이면 모든 업무를 정리하고 정년퇴임을 맞는다.

 그는 한국인 저리 가라 할 정도의 ‘지한파’ 외국인이다. 한국역사와 문화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지니고 있다. 해외 지인들에게 한국의 전통연을 선물하고, 한국에 대해 잘못된 정보를 얘기하면 모르는 사람이라도 고쳐줘야 속이 시원한 자타공인 한국홍보대사다. 직원들이 ‘라인강’이라는 한국이름을 지어줬고, 서울시 명예시민증도 갖고있다.

 “1997년 한국에 왔을 때에는 시큼한 김치냄새에 코가 얼얼했는데 요즘은 삭힌 홍어도 잘 먹습니다.”

 새 근무지에 온 지 이듬해 한국은 외환위기를 겪으며 곤욕을 치렀다. ‘금모으기 운동’을 펼치며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한국의 매력에 빠져 들기 시작했다. 보통 3∼5년에 한 번씩 근무지를 바꿔주는 게 일반적인데 라인케 사장이 자발적으로 임기를 연장할 정도였다. 그가 재임하는 동안 매출은 매년 15% 정도씩 뛰어 지난해 2000억원에 육박했다. 이 회사의 대표제품은 변비치료제 ‘둘코락스’와 영양제 ‘파마톤’, 고혈압치료제 ‘트윈스타’ 등이 있다.

 “처음 왔을 때만 해도 회사내 PC가 3대 정도 밖에 없었고, 재무담당 이사는 주판알을 튕기고 있었죠. 특히 회사내 영어가 가능한 사람이 많아졌다는데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한국이 전자와 자동차, 조선 분야에서 세계 최고를 달리는 모습에 경의를 표했다. 그러면서 일침도 놓았다. 라인케 사장은 “예를 들어 갤럭시 시리즈를 보면 애플 제품에 비해 손색이 없지만 사용자환경(UI) 면에서 외국인에게 맞지 않는 부분이 아쉽다”면서 “제품 개발과정에 참여하는 외국인 비율을 높여야 좀 더 글로벌 시장에 어울리는 제품이 나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15년간 한국인을 지켜보면서 ‘도저히 이해하지 못 할 한 가지’를 말해보라고 권했다. 라인케 사장은 “더 좋은 아이디어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외면하려는 경향”이라고 꼬집었다. 특히 젊은이들과 회의를 해보면 리더의 아이디어를 맹목적으로 순종하려는 모습이 확연하다는 것이다. 그는 “여러 국가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면 토론을 많이 하는 독일보다 한국에서의 처리 속도가 2배 정도 빠르다”면서 “하지만 리더의 의견과 다른 생각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현해야 창의력 있는 결론에 이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지난 1일부터 약값을 대폭 인하한 한국정부의 정책에 대해 아쉬움도 표했다. 그는 “다국적 제약사들이 아시아 국가 가운데 일본에 이어 한국에서 임상시험을 두 번째로 많이 한다”며 “약가 인하폭이 충격적이어서 한국에 투자할 거액의 임상개발비용을 다른 나라로 돌릴까 우려된다”고 밝혔다.

 라인케 사장은 고향 쾰른으로 돌아가면 비영리기관 여러 곳의 일을 도와줄 계획이다. 그는 “내년이면 한국인 광부와 간호사가 독일에 온 지 50주년이 된다. 한독협회가 독일과 베를린, 서울 등을 돌며 기념행사를 할 텐데 그 때 다시 한국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며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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