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지펀드 매니저들 사이에서 지난해는 ‘죽음의 계곡(Valley of Death)’으로 통한다. 투자 성적표가 2008년 미국 금융위기 이후 가장 나빴다. 헤지펀드 리서치회사인 유레카헤지와 투자전문지인 AR매거진은 “평균 10% 정도 손해봤다”고 최근 발표했다. 이는 어디까지나 평균치일 뿐이다. 치명상에 가까운 부상을 입은 매니저도 있다. 바로 존 폴슨(57) 폴슨앤컴퍼니 회장이다. 그는 원금의 57%를 까먹었다.
폴슨이 누구인가. 헤지펀드 세계의 수퍼 스타였다. 한 해 전인 2010년 성과 보수 등으로 모두 50억 달러(약 5조6000억원)를 챙긴 인물이다. 2007년엔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를 예측해 200억 달러(약 22조4000억원)를 벌어 투자자들과 나눠 갖기도 했다. 반면에 레이먼드 달리오(63) 브리지워터 회장은 그 계곡을 무사히 지났을 뿐만 아니라 적잖은 전리품까지 챙긴 것으로 확인됐다. 유레카헤지 등에 따르면 헤지펀드 브리지워터의 지난해 수익률은 16%. 달리오 회장은 39억 달러를 챙겼다. 그 결과 그는 글로벌 수익 랭킹 1위에 올랐다.
달리오의 비결은 미 국채 투자였다. 그는 미 재무부 채권 값이 오른다는 데 베팅했다. 세계 최대 채권펀드인 핌코(PIMCO)의 빌 그로스나 존 폴슨과 정반대였다. 두 사람은 지난해 지극히 상식적인 판단을 내렸다. 미국의 나라 살림이 어려워져 채권을 많이 찍어내면 값이 떨어질 것으로 봤다. 반면에 달리오는 “미국만 재정이 불안한 게 아니다. 유럽도 마찬가지다. 이런 때 미 국채 수요가 더 늘어날 것”으로 봤다.
시장은 달리오 편을 들어줬다. 유럽 재정위기가 더욱 나빠지면서 돈이 안전 자산(미 국채)으로 쏠렸다.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도 달리오를 거들고 나섰다. 그는 단기 채권을 팔고 장기 채권을 사는 트위스트 작전을 펼쳤다. 덕분에 달리오가 보유한 장기 국채 값이 올랐다.
또 다른 생존자는 바로 ‘기업 사냥꾼’ 칼 아이칸(76) 아이칸캐피털매니지먼트 회장이다. 이 회사는 34%의 수익률을 올렸고 아이칸은 25억 달러의 소득을 챙겼다. 그는 달리오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수익률은 더 높았지만 자산운용 규모가 더 작고 성과 보수도 덜 챙긴 때문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헤지펀드 매니저들은 투자자들과 계약을 맺고 투자 원금의 4~7%를 운용보수로, 투자 수익의 10~30%를 성과 보수로 챙긴다. 여기에다 개인 투자분이 낳은 수익이 더해져 한 해 소득이 결정된다.
아이칸은 지난해 주특기인 ‘기업 사냥’으로 맹활약했다. 그는 천연가스회사인 엘파소, 이동전화 메이커인 모토로라, 에너지회사인 체사피크 등의 지분을 사들인 뒤 이사 자리를 차지했다. 곧바로 경영자들을 압박했다. 회사를 구조조정해 팔도록 했다. 대성공이었다. 엘파소 등의 인수합병(M&A)이 지난해 줄줄이 성사됐다. 랭킹 3위엔 제임스 사이먼(74) 르네상스테크놀로지 회장이 올랐다. 그는 21억 달러를 벌었다. 그는 2008~2009년 엄청난 손실을 입었다. 일부 투자자들이 펀드 운용에서 손을 떼라고 요구할 정도였다. 결과론이지만 다행히 그는 자리를 지켰다. 그리고 지난해 34% 수익을 올렸다. 운용 자금의 80%로 미국과 해외 주식을 사들였고 20%는 공매도한 게 주효했다.
이들 외에 케네스 그리핀(44) 시타델 회장이 주식·전환사채·에너지를 주로 사들여 수익률 22%를 기록해 7억 달러를 벌었다. 또 스티븐 코언(55) SAC캐피털어드바이저스 회장은 에너지·유통·기술 주에 투자해 8% 정도 수익을 냈다. 그는 5억8500만 달러를 손에 쥐어 글로벌 랭킹 5위에 올랐다.
유레카헤지는 “지난해 매니저 상위 25명이 챙긴 돈은 모두 144억 달러(약 16조1280억원) 정도”라며 “이는 2010년 220억 달러보다 34.5% 정도 줄어든 액수”라고 설명했다. 존 폴슨은 25명 안에 들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