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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카드 발급 거절당한 적 있어 … 신용평가 확 바꾸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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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김상득 사장은 “현실과 동떨어진 신용등급을 확 바꾸겠다”고 했다. [사진 KCB]

금융회사 CEO가 신용카드 발급을 거절당한 경험이 있다면 말이 될까. 그것도 사람의 신용을 평가하는 회사(CB)의 사장이 말이다. 김상득(56) 코리아크레디트뷰로(KCB) 사장은 3년 전 전무 시절 이를 경험했다. 잘 쓰지 않던 신용카드를 되살리기 위해 갱신 신청을 하러 간 은행 창구에서 곧바로 퇴짜를 맞은 것이다. 창구 직원은 “신용대출 금액이 많아 카드를 내줄 수 없는 신용등급”이라고 했다. 김 사장은 당시 사정이 어려운 친척을 돕기 위해 수천만원의 대출을 받은 상태였지만 대출보다 연봉이 훨씬 많고 연체한 적도 없었다. “사람이 아니라 숫자만 보는 신용등급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지를 절감했다”는 게 김 사장의 말이다.

 부사장을 거쳐 사장이 된 지 1년이 지났지만 그는 아직 이 경험을 잊지 못하고 있다. 공급자인 금융회사의 편의에만 맞춰진 신용등급 시스템을 확 바꿔보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김 사장은 “연체율 10%인 7등급 고객의 리스크는 연체율 1%인 5등급 고객의 열 배라는 게 금융회사의 접근법”이라며 “하지만 상환 가능성으로 기준을 바꿔보면 5등급과 7등급의 차이는 90%와 99%로 그리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금융거래 기록, 그것도 부채 관련 기록만으로 산정하는 평가 방식은 더 큰 문제다. 그가 서울보증보험에 다니던 시절, 서류만 보고 보증해 줬다가 사고율이 높아졌다. 이후 신청인을 직접 만나보고 승인을 내주는 방식으로 바꿨더니 사고율이 확 낮아졌다. 김 사장은 “소득이나 자산·부채 등 정량적인 요인 못지않게 직업의 안정성과 성실성 등 정성적인 요소가 중요하다”며 “이런 부분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는 현재의 등급 평가 시스템을 확 바꾸려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그는 지난해 가을 차세대 스코어 시스템 개발에 착수했다. 금융정보는 물론 성별·나이 등 인구통계학적 요소와 거래 특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활동 등의 행동경제학적 요소를 종합해 신용등급의 품질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려는 시도다. 올해 개발을 끝낸 뒤 내년 시험적용을 거쳐 2014년 상용화하는 게 목표다. 김 사장은 “미국에선 SNS 활동으로 신용을 평가해 대출해 주는 모바일 은행이 인가를 기다리고 있다”며 “신용을 구성하는 요소를 최대한 찾아내고 이를 현실에 적용하는 게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KCB가 지난달 국내 금융권 최초로 소비자자문위원회를 만든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위원회엔 교수·소비자학회는 물론 금융소비자연맹과 경실련 등 회사로선 ‘부담스러운’ 단체들의 대표도 참여하고 있다. 김 사장은 “기름을 들고 불 속에 뛰어드는 게 아니냐는 걱정을 했지만 소비자 권익과 뗄 수 없는 신용등급 문제에선 일찌감치 비판적인 의견을 들어 반영하는 게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한양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985년 대한보증보험에 입사한 김 사장은 외환위기 뒤 한국보증보험을 흡수합병해 이름을 바꾼 서울보증보험의 이사를 지냈다. 2005년 KCB 출범 때 상무로 합류해 지난해 3월 사장으로 선임됐다.

코리아크레디트뷰로(KCB)

카드대란 직후인 2005년 설립된 개인신용평가회사다. 금융회사가 개인고객의 신용도를 체계적으로 관리하지 않아 카드대란이 빚어졌다는 반성에서 은행과 카드사 등 19개 국내 금융사가 출자해 출범했다. 기업의 신용을 주로 평가하는 다른 신용평가회사와 달리 개인고객의 신용을 전문적으로 평가한다. 현재 국내 경제활동인구보다 많은 4000만 명의 신용 자료를 관리하고 등급을 부여한다. 같은 역할을 하는 회사로는 나이스신용평가정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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