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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금융이 ‘페이스메이커’ 역할 나서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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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김교식
성균관대 경제학과 초빙교수

세계경제와 금융시장은 국제공조와 적극적인 정책대응에 힘입어 위기에서 벗어나고 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세계 금융위기는 월가의 점령시위로 상징되는 사회갈등이 전면에 드러나는 계기로도 작용했다.

 금융권의 탐욕을 비판하며 시작된 월가 시위는 오랜 기간 심화돼 온 사회양극화로 인한 갈등이 표출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의 상위 1% 계층이 전체소득의 25% 정도를 가져간다는 사실에 기반해 1% 대 99%의 대결이라는 시위 슬로건이 전 세계로 확산돼 가고 있다.

 한국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소득 양극화 속도가 더욱 빨라지고 있다. 비정규직 대비 정규직의 월평균 임금은 2008년 1.64배에서 2010년 1.82배로 확대됐다. 소득분배 불평등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2000년 0.279에서 지난해 0.313으로 악화됐다. 소득 양극화로 인한 사회갈등 문제는 한국에도 심각한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이같이 심각해지는 소득 양극화 문제를 해소하는 길은 무엇인가. 기본적으로는 경제의 지속적 성장과 효율적 분배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그동안 한국 정부가 충분하다고는 할 수 없어도 이 같은 정책을 추진해 왔음에도 양극화는 계속 심화돼 왔다. 이제는 거시적인 접근만으로 사회 양극화를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여타 경제·사회정책과 종합적인 정책 공조 아래 보다 실효성 있게 추진돼야 한다.

 금융정책도 사회 양극화가 심화하는 현실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동안 금융정책은 금융산업의 발전과 금융시장의 안정에 중점을 뒀고, 금융의 사회적 역할에는 다소 소홀했다는 반성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에 대처하기 위해 최근 정부가 서민금융과 중소기업금융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금융시스템을 보강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하다. 특히 연대보증제도를 개선하고 정당한 절차에 의한 중소기업 대출이 부실해질 경우 담당자를 면책하는 제도는 자금의 선순환을 촉진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이에 더해 사회 양극화가 완화되도록 청년층의 창업이나 서민층과 자영업자 지원을 위해 금리, 대출절차, 보증제도 등 전반적인 금융서비스 체계를 개선해 이들에 대한 금융지원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또 창업을 지원한 후 비록 실패를 하게 되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즉, 재창업 지원이나 신용회복위원회 등을 통한 채무조정제도, 신용회복기금을 활용한 저금리 전환대출 확대 등 재기를 효율적으로 지원해 주는 제도를 세심하게 갖추고 실효성 있게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내수 위축 등으로 경영여건이 악화하고 있는 중소기업에 대한 금융환경도 혁신해 나가야 한다. 지금과 같이 담보가치에 의존하는 대출관행이 지속되면 담보능력이 취약한 중소기업은 우수한 기술력이 있다 하더라도 대기업에 비해 높은 금리를 적용받게 되고, 이는 다시 경쟁력을 떨어뜨리게 된다. 따라서 기업의 기술력과 미래가치에 대한 객관적 분석을 기반으로 하는 대출행태를 정착시키는 것이 시급하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정책당국자가 의지를 가지고 제도나 법령을 개선한다 해도 실제 현장에서는 정책의지와는 다르게 운영될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제도개선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제도 시행 초기에 일선 금융사의 관행을 바꾸는 것부터 추진해야 한다. 아무쪼록 국내 금융이 양극화 해소를 위한 마라톤에서 ‘페이스메이커(pacemaker)’ 역할을 해줄 것을 기대한다.

김교식 성균관대 경제학과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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