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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종의 미술 투자] 데비한·김정욱·유현경… 그들 작품엔 우리 얼굴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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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면

서연종
하나은행 삼성역 지점장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는 초특급 대우를 받는 예술품이다. ‘모나리자’ 앞에는 늘 이 유명한 그림을 한번 보려는,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관람객들로 북적댄다. 또 혹여라도 일어날 불상사에 대비해 무장 경찰이 호위하고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4년 이상을 주물럭거리다 미완성으로 남은 작품, ‘모나리자’를 보려고 몰려든 관광객들 중에는 유독 한국과 일본 관광객이 가장 많다고 한다.

 유감스럽게도 한국 사람들 중에는 신윤복의 ‘미인도’는 몰라도, 이탈리아인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꼭 루브르에 직접 가지 않아도 국민적 교양으로 교육을 받은 탓에 신윤복의 ‘미인도’보다 더 쉽게 떠올리는 작품이다. 상설전시로 대중에게 공개하지 않는 간송미술관의 정책 때문에 신윤복의 ‘미인도’를 실제로 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신윤복의 ‘미인도’를 잘 모른다는 것은 단순한 교양의 문제가 아니라 심각한 경제적·사회적 문제임을 알아차리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우리의 미술 교육은 중·고교 시절부터 비너스와 아그리파·줄리앙을 죽자고 그려대다가 미대에 진학한다. 예술가들조차 한국인의 얼굴을 잃어버리도록 양성된다. 얼굴에 대한 미적 기준이 서구식으로 조정되고 고착화된다. 예술뿐만이 아니다. 대중문화 속에서는 더욱더 그러하다.

유현경의 ‘박보람’(2011) 캔버스에 유화, 53×41cm

 우리의 얼굴을 잃어버리면 경제적으로는 어떤 결과가 생기게 될까. 서구화된 미적 기준 때문에 서양의 스타들을 광고 모델로 내세운 화장품을 선호하게 되며, 화장품뿐만 아니라 헤어스타일·복식·액세서리도 서구화된 시각에 의존하게 되는 악순환이 시작된다. 이 순환은 비싼 화장품, 명품 의류, 수백만원 짜리 명품 백들에 대한 맹목적인 선호로 이어진다. 이것들은 원가 기준으로 보면 놀랄 만한 부가가치의 상품들이다. 한국에선 비쌀수록 잘 팔리는 시장 왜곡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사치품 시장이 커지는 것만 문제인 것이 아니다. 잘못된 예술교육과 호도된 미의식은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의 아름다움에 대한 인식이 없고 얼굴에 대한 자기 정체성이 없으니, 다음 수순은 성형으로 이어진다. 나름대로 모두 개성 있고 사랑스러운 우리의 아들딸들이 취업·결혼이라는 명목으로 얼굴을 찢고 부수는 일을 쉽게 한다. 그나마 신윤복의 ‘미인도’처럼 고치면 심리적 위안이라도 될 텐데, 서양인의 코로 입으로 턱으로 고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오죽하면 “어머님 날 낳으시고 성형외과 의사 선생님 날 만드사”라는 유행어가 있을까. 어른들은 또 어떤가. TV에선 온통 보톡스를 쑤셔넣고 주름살을 다리미로 지져낸 것 같은 얼굴로 연기하는 연기자들을 볼 수 있다. 그런 얼굴로 연기를 하니, 자연스럽고 잔잔한 미소의 연기는 물론 긴 여운이 남는 표정연기가 불가능하다. 좋은 드라마보다는 막장 드라마가 유행하는 것도 이런 것과 무관하다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질곡의 세상을 묵묵히 견뎌내온 우리들의 부모님, 그들의 거칠고 투박스러운 손과 굵은 이마의 주름, 어떤 화장품도 소용없을 것 같은 그 주름에서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는 무언의 교훈을 얻곤 했다. 그 거친 손과 주름에서 힘들어도 바로 살아야겠다는 묵직함을 얻었다. 그런데 우리의 아들딸들에게 쑤셔넣은 보톡스와 야들야들한 피부로 오도된 아름다움을 전한다면 그들은 또 무시무시하게 코뼈를 올리고 턱을 깎아내릴 것이다. 작가는 그릇된 미의식을 바로잡아 주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비너스와 모나리자도 있어야 하지만 신윤복의 미인과 단원의 노동하는 여인도 있어야 한다. 미국의 미술관에는 앤디 워홀의 메를린 먼로도 있지만, 그랜트 우드의 ‘아메리칸 고딕’도 있다. 중국 화가의 작품에선 인민복을 입은 여전사들이나 노동하는 여인들의 모습이 압도적으로 자주 등장한다. 데비한, 김정욱, 유현경 등 젊은 작가들의 작품은 이런 점에서 눈길이 간다. 그들은 얼굴을 탐색하고 모색한다. 젊은 작가들의 얼굴에 대한 탐색은 자기 정체성에 대한 탐색이기도 하다. 그들도 언젠가는 장년이 되고 노년이 될 것이다. 그들이 어떤 얼굴을 최종적으로 찾아낼지 기대된다. 아름다운 청년은 그저 자연의 산물이지만, 아름다운 중년은 신의 산물이라고 앙드레 말로는 말했다. 진정으로 아름답게 늙은 우리들의 모습을 보고 싶다.

서연종 하나은행 삼성역 지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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