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서산농장 땅 쪼개 팔아

중앙일보

입력

현대그룹 정주영 전 명예회장의 '마음 속 고향' 인 충남 서산농장이 결국 현대를 떠난다. 오락가락하던 매각방안이 한국토지공사를 통해 일반에 파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기 때문이다.

현대건설은 당장 급한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서산농장 전체 3천1백19만평 중 목장 부분을 뺀 3천82만2천평을 토지공사에 위탁 매각하는 방안을 제시했고, 토지공사는 13일 이사회를 열어 이 방안을 의결했다.

◇ 진짜 팔리나=현대는 이달 들어 서산농장에 대해 사모사채.기업어음(CP).매각대금 담보부채권 발행 등을 통한 매각을 추진해왔다. 그러나 채권을 발행해 팔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는 데다 금융기관들이 시큰둥한 반응을 보여 일반인에 매각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런 가운데 지난 11일 저녁 위탁매각 쪽으로 급선회했다. 진념 재정경제부 장관이 김재수 현대 구조조정본부장.외환은행 관계자와 만나 가급적 빨리 돈을 마련하려면 토지공사에 위탁해 매각해야 한다고 결론낸 뒤 토지공사에 이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가 내놓아 현금화할 만한 자산이 별로 없는 데다 서산농장 매각마저 질질 끌다간 현대건설에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 위탁매각 조건=토지공사는 일요일인 12일 저녁 경영회의를 열어 이 방안을 이사회에 부치기로 했다.

13일 오전 열린 이사회에서는 서산농장 공시지가의 75%(2천6백억여원)를 현대에 우선 지급하되 ▶1년 안에 매각하며▶위탁매각 수수료는 매각대금의 1%를 토지공사에 주고▶측량비.공고비 등 매각절차에 들어가는 비용도 현대가 부담하는 것이 골자인 안건을 의결했다.

또 우선 지급금액은 주택은행에서 빌리되 그 이자는 현대건설이 부담하며, 토지공사는 우선 지급분의 1백30%를 채권최고액으로 근저당을 설정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우선 지급분을 뺀 나머지 매각대금은 앞으로 현대와 협의하기로 했다.

토지공사 관계자는 "일반인에게 매각하되 감정평가한 뒤 현대에서 적정 매도가격을 받아 분양가격을 결정하겠다" 고 말했다.

◇ 어떻게 파나〓서산농장 매각의 주도권은 토지공사로 넘어간다. 일반 분양가격과 매각대금 지급방식 등은 토공과 현대가 협의해 결정한다.

땅이 전부 팔리면 우선 지급분(2천6백억여원 예상)을 뺀 나머지에 대해 수수료.비용 등을 공제하고 현대에 지급하는 방식이 채택될 가능성이 크다.

토지공사 관계자는 "농지를 팔아본 적이 없지만 다른 용지 매각경험을 살려 효율적인 매각방안을 마련하겠다" 면서 "측량과 감정평가를 실시한 뒤 적정규모로 필지를 나눌 계획" 이라고 말했다.

매각계획을 세운 뒤 토지공사는 농민과 농사짓기를 원하는 실수요자를 상대로 공개 분양할 움직임이다. 현대건설이 접수한 매입 희망자 명단도 넘겨받기로 했다.

토지공사 규정엔 공개 분양해서 다 팔리지 않은 땅은 수의계약으로 분양하는데 이 때 현대건설에 매입의사를 밝힌 사람들에게 우선권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현대건설이 13일까지 접수한 매입 희망자는 2천2백명에, 면적이 1억2천만평에 이른다.

◇ 아쉬워하는 현대인들=서산농장을 관리하는 현대건설 총무부 관계자는 "아직 결정된 게 없다" 며 현대건설이 직접 일반인을 상대로 매각하는 방안을 고집했다.

위탁매각할 경우 만족할 만큼 돈을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고, 예상 외로 일반인의 반응이 좋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

그러나 다른 직원은 "빨리 목돈을 쥐는 게 중요하다" 며 "어떤 방식으로 팔든 자구계획이 연말까지 이행됐으면 좋겠다" 고 말했다.

전체면적이 서울 여의도의 30배로 김해평야와 맞먹는 규모의 서산농장은 정주영 전 명예회장이 1980년 5월 착공해 15년3개월 만에 완공했다. 현대가 주장하는 장부가격은 6천4백70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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