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인력 "스톡옵션 말고 이적금 다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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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톡옵션은 이젠 싫다. 이적금을 달라"

코스닥 시장의 침체가 이어지면서 벤처기업으로 옮기는 고급 인력들이 요구하는 입사조건이 까다로와지고 있다.

과거 관행적으로 스톡옵션(stock option〓일정 기간이 지난 뒤 미리 약속한 금액으로 주식을 살 수 있는 권리)을 요구했던 데 비해 최근에는 고액 연봉과 별도로 프로 운동선수처럼 이적금(입사 계약과 동시에 보너스로 주는 현금)을 요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코스닥 시장 종목의 주가가 하락하자 스톡옵션의 매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 이적금 달라=증권사를 다니다 최근 온라인 쇼핑업체의 재무담당 이사로 옮긴 변모(37)씨는 입사와 동시에 연봉의 2.5배에 해당하는 이적금을 받았다.

회사측에선 상당 규모의 스톡옵션을 제시했는데, 변씨가 액수가 적더라도 현금으로 달라고 요구했기 때문.

외국계 회사에서 마케팅 매니저로 일하던 홍모(33)씨도 코스닥 등록을 앞두고 있는 인터넷 컨텐츠 업체로 옮기면서 스톡옵션 대신 수천만원의 이적금을 받았다.

미국에서 유학한 뒤 지난달 벤처 컨설팅 회사에 입사한 서모(35)씨는 입사 1년 뒤 근무실적에 따라 최소 수천만원의 현금을 받는다는 조건으로 입사 계약을 했다. 일종의 사후 지급형식 이적금이다.

헤드헌터 업체인 드림서치코리아의 박진호 실장은 "올 초부터 스톡옵션의 인기가 떨어지면서 이적금이나 지분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며 "주로 30대 중반의 프로그래머와 마케팅.금융 전문가들이 2년 단위로 입사 계약을 하면서 최소 3천만원에서 억대의 이적금을 받고 있다" 고 말했다.

그는 "상당수 벤처들이 자금난을 겪고 있지만 여전히 인력이 부족해 하는 수 없이 입사 지원자의 요구를 들어줄 수 밖에 없는 실정" 이라며 "일부 벤처인들이 걸핏하면 직장을 옮기는 상황에서 핵심인력을 안정적으로 붙잡을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 고 덧붙였다.

◇ 제 때 퇴근하겠다=근무환경도 중요한 입사조건으로 따진다. 연봉을 적게 받더라도 제 때 퇴근하고 싶다는 사람이 늘고 있다.

최근 한 인터넷 컨텐츠 업체의 마케팅 부서에 입사한 김모(33)씨는 계약직으로 들어가는 대신 주당 근무시간을 정확히 지키겠다는 회사의 약속을 받았다.

아무리 연봉을 많이 주어도 가정생활에 지장을 주면서까지 벤처기업에 갈 생각은 없다는 이유에서다.

한 벤처업체 대표는 "벤처 업계가 어려워지면서 벤처행이 '모험' 이 아닌 '위험' 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며 "그전에는 가능성 만으로도 입사를 결심했는데 요즘은 높은 연봉을 요구할 뿐만 아니라 명확한 수익 모델이 있는지, 업무가 지나치게 많지는 않은지 꼼꼼히 따지기 때문에 사람 구하기가 쉽지 않다" 고 말했다.

그는 "회사를 옮기는 사람 입장에선 조건을 따지는 게 당연하겠지만, 말 그대로 '벤처(모험)' 정신이 약해지는 것 같아 아쉽다" 고 말했다.

서익재.김용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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