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아키 히토시 〈기생수〉

중앙일보

입력

하늘에서 뭔가가 떨어진다. 공처럼 둥근 이것이 땅에 떨어지자 지렁이 같은 것이 기어 나온다. 이것은 집으로 들어가더니 사람의 귀로 들어간다.

중학생 신이치.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며 자고 있는데 뭔가가 코로 들어간다. 이상한 낌새를 챈 신이치는 손으로 뽑아내지만, 송곳모양으로 변해 다시 신이치의 얼굴을 공격한다. 결국 신이치는 손으로 얼굴을 막고 이것은 신이치의 오른손에 박힌다. 이것은 바로 기생수(寄生獸)다.

지구에 사는 누군가가 문득 생각했다. "인간의 수가 절반으로 준다면 얼마나 많은 숲이 살아남을까..."
지구에 사는 누군가가 문득 생각했다. "모든 생물의 미래를 지켜야 한다."
"인간이 100분의 1로 준다면 쏟아내는 독도 100분의 1이 될까.." 누군가 문득 생각했다. "모든 생물의 미래를 지켜야 한다."

이렇게 시작하는 〈기생수〉는 아주 짧은 도입부를 지나 별다른 설명 없이 바로 인간 줄이기의 본능을 수행하기 시작한다.

그들의 본능 '같은 종을 잡아먹어라'

기생수는 어디서 무슨 목적으로 왔을까? 그들의 일차 목표는 '사람들의 뇌를 장악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이 '같은 종을 잡아먹는 것'이다. 이것은 그들의 생존본능이다. 왜 그래야 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들은 같은 종을 잡아먹어야 한다는 이유 하나로 인간에게 아주 적대적이다.

그러나 인간의 뇌를 장악하지 못한 기생수는 다르다. 생존본능은 있지만, 자신의 숙주가 죽으면 자기도 죽기 때문에 이들은 공생관계를 지녀야 한다. 특히 신이치가 그렇다.

신이치는 오른손에 기생수가 살고있다. 그는 '오른쪽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합의를 한다. 신이치가 사용할 인간의 오른손으로서의 역할을 할 때와 기생수가 자신의 생활을 할 때를 먼저 구분한다. 그야말로 공생관계를 유지한 것이다.

보잘것없고 비합리적인 인간들

기생수들은 기능적으로 아주 뛰어나다. 학습능력이 무척 빠르고 어떤 물체로든 변형이 가능하다. 오른쪽이의 경우 몇 주에 걸쳐 일본어를 완전히 익히고, 책을 읽으면서 인간에 대해 배운다.

기생수와 비교했을때 신이치, 즉 인간은 무척이나 보잘것 없고 비합리적이다. 힘이 센 것도 아니고 자신의 몸하나 보호할 무기조차 없으며, 본능 또한 무디다. 그런데다가 남을 위해 자신을 위험에 빠뜨리기도 하고 생존의 위협이 없는데도 다른 생물이나 자연을 해치기도 한다.

신이치는 기생수에게 머리를 장악당한 엄마의 공격으로 가슴에 치명타를 입는다. 오른쪽이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그의 가슴을 치료하고, 그 이후 신이치는 점점 기생수가 가진 본능에 가까워지고 서서히 인간의 감성을 잃어간다. 그리고 오른쪽이도 신이치가 말하는 말도안되는 인간의 감성에 동화되어간다.

신비롭고 두려운 존재 외계인 그러나..

인간은 항상 미지의 세계를 동경한다. 특히 우주 밖의 생물체에 대해서 말이다. 외계인이라는 것은 인간과 다른 모양을 할 수도 있고 인간의 몸속에 들어와 인간을 지배할 수도 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기생수처럼 누구의 뇌를 지배해 나를 잡아먹을 수도 있다.
그것은 나와 상관없는 사람일수도 있고, 내 가족일 수도 있다. 이보다 더 무섭고 끔찍한 게 또 있을까.

처음 도입부의 그림은 기생수는 미지의 세계에서 온 생명체인 것처럼 보여준다. 그러나 글을 가만히 읽으면 지구의 누군가가 자연과 동물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인간의 수를 줄이기로 결심한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아마도 인간 줄이기는 하늘의 뜻이 아니라 또 하나의 인간이 벌인 음모였을 것이다. 이것은 살인 기생수의 생사를 하늘에 맡기지 않고 자신이 처리하는 신이치의 마지막 행동에서도 보인다.

결국 공생이다!

처음 사람의 몸을 장악한 기생수들은 많은 시행착오를 거친다. 인간을 마구잡이로 잡아먹다 조직적으로 단체를 결성하기도 하고 5개의 기생수가 한꺼번에 기생하는 괴물(?)을 만들기도 한다.

결국 이들은 인간들과 전면전을 치르고 인간보다 강하지 못하고 인간을 지배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사회속으로 동화되어 간다. 오른쪽이 처럼 일찍이 신이치와 공생관계를 맺었던 것처럼 수많은 기생수들은(사실 얼마나 많은 수치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인간 외에 음식을 먹는 법을 배우고 인간의 삶을 살려고 하는 것이다. 인간과 함께 사는 방법을 익힌 것이다.

신이치와 오른쪽이의 관계는 인간과 인간의 뇌를 장악한 기생수와의 관계를 설명하기도 하고,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대변하기도 한다. 결국은 신이치와 오른쪽이의 공생관계가 가장 이상적인 형태였을 것이다.

오른쪽이가 인간에 대한 것중 가장 이해하지 못한 부분은 '희생'이라는 것이었다. 자신의 생존과는 상관없는 다른 이들을 위해 자신을 버리는 것을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이해 못할 부분들이 끝내는 살인 기생수를 물리칠 수 있었다.

마지막 오른쪽이는 '왜 죽은 동물을 보면 연민이 생기는지에 대한' 신이치의 질문에 이렇게 말한다.
"그건 인간이 그렇게 한가한 동물이기 때문이지. 하지만 그게 바로 인간이 지닌 최대의 강점이라구. 마음에 여유가 있는 생물, 이 얼마나 멋진 일이야!"
그래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이것이 바로 인간일 수 있는 마지막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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