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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 속 떠나는 남재준 육참총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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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진급 비리 논란은 내 때가 마지막이 될 것이다."

22일 군 대장급 인사가 확정되며 다음달 7일 자리에서 물러나는 남재준 육군 참모총장. 그가 최근 측근들에게 했던 말이다. 자신이 장성 진급 비리 의혹의 몸통으로 몰렸지만 실제로는 인사 외압을 막기 위해 노력했다는 소회를 밝힌 것이다.

지난해 북방한계선(NLL) 보고 누락 사건이 불거지면서 남 총장은 유력한 장관 후보로 거명됐다. 그러나 그는 이를 부담스러워했다. 측근들에게 그는 "북한의 도발이 결과적으로 대한민국 군 인사에 영향을 주는 전례를 만들 수 없다. 또 내가 장관이 되면 육사 동기인 합참의장을 바꾸는 후속 인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린다. 군내에서는 대부분 그의 깐깐한 성격을 높이 평가한다. 5.18민주화 운동 당시 육군대학 교관(소령)이었던 그는 "군이 광주에 동원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가 전역될 뻔했다. 전방부대 GOP 대대장 시절에는 6개월간 집에 들어가지 못했는데 휴가를 얻어 가보니 두 딸이 모두 영양실조로 병원에 입원한 일도 있다고 한다. 그는 지금도 휴일이면 계룡대에서 운전병이 딸린 관용차 대신 자신의 아벨라(기아의 단종된 소형차) 승용차를 직접 몰고 다닌다.

그러나 군 검찰은 여전히 남 총장을 진급 비리의 '보이지 않는 손'으로 믿고 있다.

그는 총장이 되자마자 '인사 청탁 전화'를 거절토록 참모들에게 지시했다. 총장실과 인사참모부의 장교.부사관들에게 "인사 청탁 전화를 하면 거명된 당사자에게 불이익이 돌아간다고 답하라"며 전화 응대 교육을 했다. 2003년 가을 인사를 앞두고는 실제로 인사 청탁이 들어온 당사자들에게 육본에서 경고 e-메일을 보냈다.

예비역 장성들의 부탁엔 "그런 전화는 받지 않겠다. 찾아오지도 마시라"며 전화를 끊어 건방지다는 비난을 들었다는 얘기도 있다. 군 관계자는 "남 총장은 골프도 치지 않아 자연스럽게 부탁할 기회도 만들 수 없었던 인물"이라고 말했다.

2003년 3월 말 총장으로 내정됐던 그는 당시 면식이 없던 윤일영 사단장에게 전화했다. "나 남 대장인데"로 시작했던 통화에서 그는 "인사 원칙을 제대로 지켜보자. 당신을 육본 인사참모부장으로 부르겠다"고 말했다. 이후 남 총장 지시로 윤 부장은 장교들에게 전화 청탁자 명단을 만들도록 했다. 윤 부장 자신은 인참부 판공비 사용 내역을 내부 전산망(인트라넷)에 올렸다. 회식 장소와 비용, 참석자까지 모두 공개했다. 그는 사단장 시절부터 판공비 사용 내역을 공개해 왔다.

이 같은 일들로 인해 남 총장은 지난해 중반까지 청와대의 신뢰를 받았다. 그러나 지난해 8월 31일 육본 회의 석상에서 그가 군검찰 독립에 반대하며 '정중부의 난'을 거론했다는 보도가 나오며 그는 여권 일각으로부터 군 개혁에 반대하는 인물로 각인됐다. 육본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군검찰은 지금도 정중부의 난 발언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이와 관련, 남 총장은 "나에 대한 평가는 후배들이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제 그는 산행과 독서로 소일할 퇴임 후를 준비하고 있다.

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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