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속화 속 역사성 찾기 '한국의 풍속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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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속화' 하면 우리는 관성적으로 18세기를 떠올린다.

당대 화단의 주인공은 귀가 따갑도록 들어온 단원(檀園) 김홍도.혜원(蕙園) 신윤복.긍재(兢齋) 김득신. 이들이 활약한 시기를 '풍속화의 절정기' 라고 하는데는 별다른 이론이 없다.

주역이 빛날수록 그 그늘도 넓게 마련. 이 세 거두(巨頭) 가 보여준 발군의 기량은 통사적 관점에서 '18세기〓풍속화의 시대' 로 못박아버리는, 우려할 만한 반작용을 낳기도 했다. 한국사 전반에 투영된 풍속화의 흐름을 보다 폭넓게 볼 수 있는 시야를 막았다는 이야기다.

이 책의 가장 큰 가치는 이런 협소한 시각을 교정하면서 관심 영역을 한국사 전반으로 넓혔다는 데 있다.

이런 폭넓은 안목과 탄탄한 이론적 바탕 위에서 풍속화의 연원(淵源) 과 역사적 성격을 잘 짚었다.

공부가 가장 승할 때 쓴 박사학위 논문의 확대판이어서 그런지 책의 행간에서는 저자의 성실성이 그대로 묻어난다.

덕분에 이른바 통속의 세계가 아취(雅趣) 의 세계와 통하는 '대속대아(大俗大雅) ' 의 경지에서 피어난 민중예술의 정화들을 일목요연하게 감상할 수 있게 됐다.

풍속화는 당시 사회의 생활모습을 그린다는 점에서 리얼리티가 그 생명이다. 리얼리티는 현실성.기록성이 뒷받침될 때 제대로 살아난다.

예를 들어 신윤복의 그림 '화류놀이(年少踏靑) ' 는 양반들의 농염한 사랑놀이 등 조선시대 유희(遊戱) 와 복식(服飾) 문화 등을 잘 담아냈다. 이 그림을 명작으로 꼽는 것은 바로 이같은 현실성과 기록성을 갖췄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이러한 풍속화의 속성을 기초로 방대한 역사를 재구성했다. 그러자면 어떤 구분이 필요하다.

저자는 한국 풍속화의 전반을 네개(신앙.정치.통속.생활) 로 유형화하고, 그 유형별 성격을 살폈다. 언뜻 기계적 나눔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렇다고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선사시대 경남 울주의 바위그림(岩刻畵) 을 비롯, 고구려.신라.발해의 고분벽화, 조선시대의 감로도(甘露圖) 등은 신앙의 풍속화로 묶었다.

조선시대의 '삼강행실도' 등은 정치성 있는 풍속화로, 김홍도 등의 그림은 통속의 풍속화로, 서양화풍이 엿보이는 조선말 김준근의 '단오추천' 등은 생활의 풍속화로 분류했다.

이런 분류에는 어원적 정의가 뒷받침됐다. 제1부 '풍속화란 무엇인가' 에서 저자는 중국 고문헌(주례.周禮) 자료를 기초로 '풍' 은 '통치자가 정치를 통하여 백성을 교화(上以風化下) ' 하는 성격을 지니고, '속' 은 '백성의 전통적인 생활(民所承襲) ' 을 의미한다고 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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